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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생명의 불꽃으로 산화되는

  

정원에 때늦은 장미꽃이 다발로 붉은 가슴을 늘어놓고 있는 산뜻한 아침이다.
수필가이며 시인이신 H교수님께서 보내준 귀한 수필집을 뜨거운 마음으로 읽는다.
어쩌면 농밀하게 잘 익은 영혼의 약술을 빚어내듯 농축된 언어로 걸러 낸 이 작품에서 편편마다 흐르는 장강<長江>의 푸르른 생명의 맥을 짚어보며 작가의 깊고 심오한 수필 세계를 본다. 그리고 뜨겁게 맞부딪쳐 오는 생동감으로 흐르는 언어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마음의 창을 맑게 닦아주고 정감으로 흐르는 삶의 의미를 더 깊고 진하게 안겨다 준다.
사실 한 편의 시나 수필을 쓴다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쉽게 생각 될 찌 모르지만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피 뜯는 아픔의 산고를 치르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톨스토이는" 모든 예술은 인간의 영혼 속에 타고 있는 불이다." 라고 했다. 그 불은 타면서 열을 가하여 주고 또 빛을 발하여 준다. 그렇다면 그 불은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불이 아니라 시인이나 수필가 자신이 피나는 노력의 고통으로 점화시켜주는 불씨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 독자의 공감대를 흔들어 일깨워 주는 혼속에서 산화의 몸짓으로 타고 있는  뜨거운 불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 자신은 수천 수 백 번의 죽음을 감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혼과 혼으로 결합될 수 있는 독자의 혼속에서 스스럼없이 아픔의 고통으로 산화되어 영원히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부활을 의미하는 작가 자신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예술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면 한편의 시나 수필을 위한 자신은 그 문학적인 입장에서 후회 없이 산화되어야 한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이다.
위대한 창작을 원한다면 그 생활이 위대해야 한다는 밀톤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시나 수필을 쓰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런 사명감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도자와도 같은 고행의 산고를 치르면서 인간구원을 위한 문학으로서의 사명감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를 두고 본다면 종교가 궁극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여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인간의 구원된 삶을 위하여 존재한다면, 문학 역시 미래지향적인 위치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존재하여야 된다고 본다.
성실과 인내와 고통과 자기희생으로 바쳐진 삶 속에서 걸러내는 작품이란 독자의 공감대 속에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을 지니고 독자와 하나가 된 결합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KBS < 여성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에서 생방송을 얼마 동안 강미란 아나운서와 함께 문학을 지망하는 여성들이 응모한  작품을 선정하여 해설과 함께 시론과 수필론을 곁들어 진행을 맡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고통이 따르지만 왜 작가는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고통이 따르지만 이 작업을 왜 중단하지 못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것은 마치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사명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 작업이기에 고통이 따르지만 중단하지 못하는 소이가 거기 있는 것 같다고 답한 적이 있다.
사실 모든 예술 작업이 다 고통의 산물이며 자기 진통을 겪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 역시 변명 같을지 모르지만 산고의 고통이 따르지만 중단할 수없는 채 오늘까지 숙명처럼 받아드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마치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해도 쉽게 포기 할 수 없는 생에 대한 애착과도 같이 오늘의 나를 다스리고 있는 것과 꼭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오늘날과 같이 모든 문명이 다원화되어 복잡해진 메카니즘시대에 있어서는 자기 결정을 내리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단할 수 없는 붓끝이 이 시대가 문학인이나 예술가들에게 요구하는 사명과 의무라면 곱절 난 아픔의 산고를 지불하드라도 그 사명감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문인은 문인대로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자기 임무를 충실히 하여 붕괴되어 가려는 인간성회복과 정신문화를 지키기 위하여서라도 칼보다 더 무섭다는 붓끝의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 같다.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문명이나 사회의 몰락은 외적인  침입이나 화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정신의 분열과 사회의 부조리에 의한 자기 결정능력의 상실 때문이다"라고 하였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가며 살아가는 슬픈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지 배부르게 먹는다는 것과 자기만이 잘 살면 된다는 사실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참 진리대로 자기 성화를 유도한다면, 문학 그 자체도 종교나 다름없는 사명감으로 인간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늘 홍진처럼 고열을 앓는 삶일지라도 영혼의 아픈 고뇌로 삶의 진실을 투영 시키고자 하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성찰과 정직하면서도 지순한, 겸허하면서도 칼보다 무서운 붓끝으로 다듬어지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생명의 산화의 불꽃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둔재인 자신인지라 문학도 인생도 겨울 민둥산에 나목처럼 마냥 무거운 나이의 무게를 안고 그저 보람과 결실을 거두지 못한 허무의 뒤안길에서 추위만 탈뿐이지 수필다운 수필이나 시다운 시도 생산하지 못한 채 문학인이란 칭호만 받고 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목숨을 위하여, 뜨거운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고 싶은 독자와의 소중한 만남을 위하여, 나의 시 나의 수필과 인생은 다듬고 다듬어진 그 진액으로  독자의 영혼에 불꽃으로 타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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