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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詩와 종교를 온 몸으로 껴안은 여류 시인 朴松竹

=문예시대의 작가 탐방=

          詩와 종교를 온 몸으로 껴안은
                           여류 시인 朴松竹


         ■ 대담일시: 1997년 8월 6일 (수) 18:30
         ■ 장    소: <문예시대> 편집실
         ■ 대담자  :임종성 (본지 주간. 시인


이번호에는 부산문인협회 부회장이신 박송죽 시인을 모시고 그의 문학관과 작품세계를 조망해 보기 위하여 대담과 아울러 자선 대표 시를 싣는다. 또한 그에 대한 시인론을 동시에 게재한다.<편집주>

임종성: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무척이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시고 또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희 < 문예시대> 작가 탐방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특히 여성문학인으로는 첫 번째 손님으로 모시게 되어 더욱 자리가 빛난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박송죽: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첫 번째 여성이라니 더욱 영광입니다. 먼저 문화의 황무지라 할 부산에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꾸준히 <문예시대>를 발간하고 계시는 임 주간님을 비롯하여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 동안 저는 병치레 때문에 무더위를 피해 피서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하며 조용히 보내고 있습니다.

임종성:  몇 년전에 교통사고를 강하여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는데 아직도 그 후유증이 심한가 보군요?

박송죽:  네. 생각보다는 교통 사고 후유증이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외형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니 건강한 사람으로 생각 합니다만 저 자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오랫동안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릴 병원측에서는  뇌수술를 하자고 했지만 저의 병동에 함께 있던 사람이 뇌수술을 하고 언어 장애가 되어 영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을 보고 남편이 뇌수술은 좀 두고 본 이후에  하자고 미루게 되었답니다. 다행히 휴유증에 지금껏 고통을 당하고 있고 그 고통 때문에 자주 병원을 찾습니다만 오히려 저 자신의 영적 성장에 매질로 생각하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지나간 일입니다만 제가 임원하고 있던 병실이 생과 사가 교차되는 수술실 바로 옆이라 공포와 불안이 늘 검은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공포와 불안한 어두운 그림자에 눌러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억지로 죽어도 좋으니 퇴원시켜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저의 완강한 태도에 어쩔 수 없었던지 꼭 퇴원하고 싶으면 퇴원하되 그 책임은 자기들이 질 수 없다면서 앞으로는 시를 쓸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진단 결과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퇴원하겠다고 고집해서 퇴원하고 난 후 얼마 지나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 그 동안 저를 위하여 애쓰셨다는 감사하는 마음과 억지로 퇴원했어도 건재 하다는 걸 전하기 위하여 편지와 함께 서투른 솜씨로 묵화로 난을 그려 보내 드렸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몇 개월이 지난 후 다시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을  찾았을 때 잘 표구한 저의 그림이 담당의사 선생님의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깜짝 놀라니까 그 선생님은 기적 같은 일이라 기념으로 표구를 해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보고 있노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실 그 정도로 그 당시에 저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고 지금껏 그 휴유증에 고통은 당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 탓인지 요즘 와서는 좀 힘에 겨운 것 같군요.

임종성:  무척 고생이 많았군요. 더욱 더 건강을 회복하셔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시길 빕니다. 이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 해 볼까 합니다. 선생님께서 문학을 하게 된 배경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문단 데뷔 과정도 들려주십시오.

박송죽:  저의 문학의 첫 출발은 중학교에 입학해서인 것 같습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에 못 견디어 짧은 글의 형식을 빌려 썼던 것을 문예 작품 공모가 있어 응모했던 것이 당선되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상을 받게 된 것이 문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후 문학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태우며 1958년도에 첫 시집 <보라빛 의상>을 상재하여 문단의 말석에 얼굴을 내민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작고한 “일출봉에 해뜨거든”이라는 가곡의 작사자인 김민부 시인과 이미 작고한 박태문 시인과 그리고 현재 포항문화방송국 편성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장승재 시인과 일본에 가 있는 강상구 소설가 등과 함께 동인 활동을 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어요.
결혼 때문 이였습니다. 결혼을 하니까 창작이 쉽지 않아 얼마간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만, 문학에의 향수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다잡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78년에 전봉건 선생님이 발간하는 <현대시학>에서 김춘수 선생님께서 추천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셈입니다.

임종성:  처녀 시집 등 낸 갓까지 치 면 시작 경력이 40년이 거의 다되어 가는 것 같군요. 그동안 내신 시집도 매우 많을 것 같습니다만...,

박송죽:  글쎄요. 내가 낸 시집으로는 처녀시집 1958년 <보라빛 의상>을 비롯하여<풍차는 돌고 있다> <저 어둠이 내게 와서 > <눈뜨는 영혼의 새벽> <내 영혼의 외로운 돌섬 하나> <등불로 타는 영혼의 산울림 ><생의 한 가운데로 스쳐 가는 불의 바람이 되어><열쇠를 찾습니다><푸른 침묵 속에 그대 음성> <다섯 손가락의 삶의 지문>등 10권이 있고 수필집으로는 <운명의 올을 풀면서> <사랑하므로 아름다워라>가 있습니다. 그 밖에 공동으로 펴낸 한일 시집2권 과 세계시인협회가 펴낸 사화집 15권 등이 있습니다.

임종성:  생각보다 많은 작품집을 내셨군요. 往人薄命이라는 말도 있듯이 아름답다고 모두 행복한 것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은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 당장 죽어도 좋으니 미인 소리 한번 들으면 원이 없겠다”는 여성들도 허다합니다. 그 만큼 아름다운 용모에 대한 관심과 동경은 거의 여성들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사랑과 직결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여성의 아름다움은 용모나 체격 등 신체의 아름다움에만 있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팔등신의 빼어난 미인이라도 마음이 곱지 않으면 진정한 미인이라 할 수 없겠지요.
“ 그대여, 아름다움은 눈만을 즐겁게 하지만 고운 마음씨는 영혼을 매혹시킨다”고 읊은 볼테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면의 미를 갖추지 않으면 오히려 추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dpt 조상들이 미인의 조건으로 뛰어난 용모 외에 지적인 품성과 자질을 중시한 것 도다 그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가령 미인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다면 외모는 꽃의 겉모양이고 품성은 향기라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아무리 외모가 아름답더라도 고귀한 품성을 갖추지 않으면 향기 없는 꽃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시를 쓰는 여성. 이를테면 여성 시인은 시를 쓰고 시를 사랑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향기를 세상에 빚어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와 여성에 대하여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박송죽:  특별히 시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기는 뭣하지만 시는 모든 장르를 포괄해서 그 중에 가장 섬세하고 감성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어찌 보면 .여성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듯이 시 또한 모든 예술의 꽃이라 할 만큼 강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구태여 시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한다는 것은 그 시각과 견해의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남성이 쓴 시이건 여성이 쓴 시이건 시는 시로써 시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임 선생님께서 아시다시피 시는 여러 장르 중에 가장 농축시킨 언어로 조립되어 풍부한 상상력과 사상성을 부여해 주는 데에 그 특질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좋은 시는 아름다운 생명의 꽃밭을 이루며 그 꽃밭에서 풍겨주는 향기가 삶을 더운 더 풍요롭게 해 준다고 봅니다. 그 런 의미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한 괴테의 말과 "태아의 무게로 말미암아 삶을 안으로 깊숙이 지녀보지 못한 안이한 남성보다 근본적으로 한결 성숙한 인간, 한결 아름다운 분 “이라고 릴케가 여성을 옹호했듯이 여성이기 때문에 더 더욱 사물에 애정으로 보듬어 껴안으며 운명적인 죽음의 빛깔까지도 사랑하려 하는 모성적인 본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시로써 형상화시키고자 하는데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조금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긴 언젠가 내 시의 독자 한 분이 내 시를 보고 여성 시로써는 선이 굵고 톤이 높다고 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의 시는 비교적 어둡고 거친 편입니다. 가능하면 밝은 면 보다 소외되고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사물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기엔 내가 숨쉬는 현실이라는 이 시대의 공간이 너무도 혼돈과 무질서로 어두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면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는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될 때가 더 많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이대로 흘러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위기의식마저 느껴질 때가 많아요.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 시인은 그 시대를 위하여 예언자적인 입장에서야  하고 또한 그 시대의 산소량을 측정하는 측정기 역할까지도 담당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도움을 주고 그 어떤 예언자적인  입장에 서서 이 시대와 함께 아파하며 고통을 나누며 또한 그 치유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자문하며 자책할 때가 많았습니다.

임종성:  선생님의 말씀은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문학에 대한 작가의 신념이 창작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회에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본질을 작가의 신념과 관련지어 간단히 덧붙여 주시지요.

박송죽:  19세기 신념의 문제는 문학의 근본 문제의 하나로 부각되었습니다. 우선 작가가 무슨 신념을 가지고 작품을 써야 하는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특별히 작가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성인이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까. 많은 신념의 체계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유독 문학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성인은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적 신념이나 무신론, 유물론, 인본주의 등 어떤 신념이든지 철저히 또는 어떤 유보 조건 하에서도 가질 수 있습니다.
문학적 창작을 위하여 그 어느 것도 특별히 도움이 된다든지 불리한 것은 없습니다. 신념의 문제는 오히려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어떤 신념과 그 작품을 읽는 독자 사이에 벌어지게 됩니다. 작품이 말하고 있는 종교, 또는 철학, 인생관, 다시 말하면 작품이 주장하고 있는 , 또는 근거로 삼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 독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것을 독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또는 받아들일 경우 그것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등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학이 말하는 상상적 ,감성적, 진리는 사실은 진리가 아니라 일시적인 정서적 만족, 심리적 욕구의 대리적 충족에 불과하다고 실증주의자들은 분석했습니다. 이후부터 점차로 신념은 반드시 진리, 적어도 실증주의적인 진리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대두되었고 문학은 그처럼 진리와는 달리 개인적 주관 신념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점점 증가하였습니다. 진리를 진술이라 한다면 외형상 그러한 진술을 닮았으되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진술을 유사 진술이라고 하고 유사 진술은 진리의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정서적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한다고 상당히 충격적인 구분을 해낸 사람이 리처즈였습니다. 따라서 문학은 진리와 관계가 없어도 되며, 신념조차도 독자의 정서적 효과를 조정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신념과 문학은 분리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초근에 이른바 과학적 진리라는 것은 절대적이 아니라 실험적이고 가설적이라는 즉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절대적 독점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인간 내면의 깊이 자아와 관련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한편의 서정시는 진리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삶의 진실, 다시 말하면 일치의 진실과 일관성의 진실을 독자에게 옮겨주는 미적 진정성을 갖는다고 생각됩니다.

임종성:  이제 신앙과 종교에 대하여 질문을 드려 볼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가톨릭 신자이시고, 몇 년 전  교통사고 때에도 신앙의 힘으로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신앙 시, 시와 종교에 대하여 말끔해 주십시오.

박송죽:  시가 인간의 구원 의지를 부각시켜 주는 구심적 역할을 담당한다면 종교 역시 인간을 구원해 주는 부활 신앙에 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의 흠집을 찾아내듯이 신앙<종교>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을 가꾸어 갑니다. 신앙은 마음의 거울이자, 자기 성찰의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미국 예일 대학 교수이며 신학자인 H,뉴엔은 “ 생명은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죽음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영원은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적적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내가 나답게 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출발이자 하느님의 본질에 완전히 흡수되는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다워진다는 것은 최초에 하느님의 모양대로 빚어진 그 분의 중심 추를 맞출 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존재의 의미가 발견되리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기도의 제목은 참다운 내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형식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순수 그대로 영혼의 선결작업을 할 수 있는 종교시는  마치 고백소에서  고해하는 것과 같이 나를 비우는 작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부단히 저 자신과의 싸움에도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을 때까지 풀어야 할 숙제처럼 문학도 인생도 종교도 깨달아 낸 것으로 채우지 못한 채 설익은 과일처럼 풋내만 내고 있지 않나 걱정이 앞섭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나이를 먹은 탓인지 신앙의 자아화라 할까 종교시를 써보고 있습니다. 고상하게 표현 해 본다면 순결한 내가 되기 위한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임종성:  신이나 부처 등 초인간적이며 절대적인 것을 사모하고 숭배하며 그것으로 위로와 안심 또는 행복을 얻는다는 감성에 의해 쓰여진 시를 우리는 흔히 종교시라 말하고 있습니다.
부라우닝, 블레이크, 클로델, 프랑시스 잠 등은 종교적인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현승, 박두진, 서정주, 등의 시에서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박 선생님이 속해 있는 카돌릭 문학에서는 김남조, 구상 홍윤숙 시인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상적인 종교시는 어떤 시일까요.?

박송죽:  신앙시의 내면 풍경 안에 내재하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 밤바다 반짝이는 별들,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이 모든 세상의 사물들은 존재의 수수께기를 풀기 위한 어떤 기호가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에로 인도하는 영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승학산을 바라보면 수많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푸른 모습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무라는 사물에 대하여 무한한 경외심를 가지기도 합니다.
신앙 시는 교리에 묶이거나 관념화된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잠겨드는 영혼의 울림 같은 것으로써 신앙과 미학이 육화된 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임종성:  우리의 중세기 문학사는 질적으로 우수하고 양적으로 방대한 여성문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문학사의 자랑스런 강점이기도 한 것이죠. 하지만조금은 더 미세한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견해는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남녀의  무학 사이에는 남녀의 문학 생활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그랬듯이 뚜렷한 국경선이 그어져 있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한글과 한문이 診文/眞文으로 대립되었을 때 그 診이란 원래 “상스럽다” “속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그것이  診/眞의 대립이 보여주고 있듯이 “참되지 못한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診의 문학이 다름 아닌 여성 문학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령 여성이 쓴 편지를 內簡이라고 하듯이 여성 텍스트는 안의 텍스트였다는 사실에도 유념할 만한 일입니다. 內外라는 말을 쓸 때 外는 한 시대의 공적인 사회, 공적인 세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內簡의 內는 사적으로 한정된 국지의 의미인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오늘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페니미즘 문학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문학 외적인 여성들의 잃어진 영토를 문학을 통하거나 문학 안에서 찾자는 움직임도 물론 페미니즘 문학 비평론에서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현재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 문학의 비중을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와 아울러 우리 부산 여류 문학의 현황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박송죽: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문학을 남성, 여성으로 수별하는 그 자체는 무의미할 지도 모릅니다. 한국 현대 여성 문학은 남성 문학과 마찬가지로 1920년대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 80년대 중반이후부터 그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 여성 문학인의 수는 전체 문학인수의 30%에 이르고 있고, 한 권 이상 저서를 가진 여성 문학인만도 수천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여성들의 문학 창작의 저변이 확대되었다고나 할까요. 따라서 여성들에 의해 여성을 말하는 글쓰기 및 많은 문학 작품에서 여성성<여성주의>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평론가도 지적했듯이 여성주의는 근본적으로 여성적인 것이 남성 중심적 편견에 의해 왜곡되고 억압되어 왔다는 성 모순 인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부장제 매커니즘, 즉 모든 문학적 담론 속에 성이 구성되어 온 기반을 폭로하고 변화시켜 궁극적으로 성 모순의 극복에 여성주의의 공통된 목적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여성문학의 비중은 여성의 성적 학대 문제라든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산되고 있는 이혼 , 미혼모 문제, 매음문제, 그리고 공해와 오염 문제, 사회 봉사를 통한 헌신 등에서 새로운 주제를 찾고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보다 여성문학인들은 문학을 통한 여성들의 자기 정체성 찾기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창작에 힘써야겠으며 평론가들도 여성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론의 정립 및 자리매김과 아울러 현대문학에서 여성의 글 쓰기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 기반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 주길 부탁하고 싶군요.
우리 부산에서도 각종 문예지와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을 통해  등단하는 유능한 여성 문인들이 날로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시조시인이신 이영도 선생님과 소설과 한무숙 선생님이 부산 여성문학의 터를 잡은 이후 황양미, 정영자, 진경옥, 한영자, 이은경, 선생님 등의 중진 문학인들이 그 뒤를 이어 부산 여성 문학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해 왔고, 초근에는 많은 후배 문인들이 나름대로 부산 여성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힘쓰고 있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전국 어느 도시보다 월등한 저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85년도에 전국적으로는 지방에서 처음으로 각 장르를 포괄하여 여성 문인들로만 모임을 갖게 된 < 부산 여류 문학회>가 발족되어 작품집 발간 및 시화전, 시낭송회 등을 개최하면서 눈부신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부산 여류 문학인회는 회칙에 문단 등단한지 3년이 경과해야 추천을 받아 들어 올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신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91년도에는 여성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하고 더 많은 여성 문학인들을 끌어안기 위하여 문단에 나오면 언제라도 회원으로 가입 할 수 있는<부산여성 문학회> 라는 회가 새롭게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까지 이 모임은 여성 문인들의 친목 도모뿐만  아니라 질적 향상을  위하여 각종 세미나와 <부산 여성 문학 상>을 제정하여 수상하고 있어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임종성:  선생님께서는 95년도엔가 부산 여성 문학상을 받으신 걸로 기억됩니다만 지금까지 받으신 상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박송죽: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군요. 금방 임 주간님께서 말씀하신< 부산 여성 문학상>
<세계시인상> <부산 문학상> <부산시인상>등을 수상 받았습니다.

임종성:  요즈음 많은 문인들이 외국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외국 여행을 해 보신적이 있는지요? 문인들의 외국 여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박송죽:  많은 사람들이 국제화,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너도 나도 외국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인들이라고 외국 여행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소재와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소재를 찾아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다양한 주제의 글을 창작하는 것은 대단히 유익하리라고 봅니다. <어린 왕자> <인간의 토지>등의 생텍쥐페리나<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등의 유명한 작품을 남긴 일본의 하루키도 세계 여러 곳을 전전하고 떠돌아 다니거나 여행과 해외생활을 하며 원고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전부터 여행을 소재로 쓴 일명 기행시을  소재로 쓴 일명 기행시 나 기행소설들이 발표되어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히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문학과 기행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이게 한 시대의 유행으로 끝나서는 안되리라고 봅니다.
저는 외국 여행을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2년 전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잠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만 미국인의 생활이나 자연환경, 그들의 의식 등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문학인을 떠나 일반 생활인의 눈으로 미국의 모든 면을 보아도 새로운 느낌이 많이 밀려오더군요. 아직 구체적인 시상을 떠올려 시작은 하지 않았지만 보고 느낀 것을 한번 표현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 보고 글도 쓰고 싶습니다.

임종성:  끝으로 문학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나 후배 문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간단히 해 주십시오.

박송죽:  저는 문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능한 한 소중히 여기고 모두를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고져 노력하는 편입니다. 선배는 선배대로 좋은 삶의 표양를 존경하며 본받으려 하고, 후배는 후배대로 사랑으로 지켜봐 주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도와주고 싶은 심정으로 지내려고 합니다.
후배들에게는 외람된 부탁 말이 될찌는 몰라도 하나의 장인 정신으로 각고의 노력으로 격조 높은 필력를 가다듬고 성실하게 시 창작에 임하여 주기를  당부 드리고싶습니다. 아직 젊어서인지는 몰라도 어떤 후배들은 성급하게 시작을 끝을 내려 합니다.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좀 더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시인이란 칭호는 자기 신분을 격상시키고 폼을 내주는 그런 겉 치래가 아닙니다. 또한 문단에 데뷔하여 시인이란 칭호를 받는다고 해서 완전히 시를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죽는 날까지 고통의 산고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 시인의 길임을 명심하고 더욱 더 정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임종성: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박송죽:  아닙니다. 오히려 정리되지 못한 답변인 것 같아 죄송합니다. 지루한 시간 임 주간님께서 더 수고가 많았습니다.

==작가탐방 / 자선대표시==<생명의 노래> <추억수첩> <초점 맞추기> <우리서로><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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