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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이 계절에 만나고 싶은 사람 = 기획특집=

  시와 수필 문학 통권 11호 2007년 겨울호  

한국 서정시의 대명사
      박송죽 시인을 찾아서
              조선영: 본지 명예기자 와의 대담

<1>박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여류 작가로서 가장 오래 시를 쓰시며 문단생활을 하신 줄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시 작업을 했으며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네, 반갑습니다. 먼저 지면을 할애 해주신 시와 수필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58년도에 <보라 빛 의상>이라는 처녀시집을 상재하고 난후에 지금은 돌아가신 고 김춘수 선생님께서 추천하여 주시어 <현대시학>을 통하여 문단에 데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를 쓰개 된 동기라면 처음에 시가 좋아서 시를 자주 접하다가 제가 중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백일장에 나가서 <장원>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 선생님들의 칭찬에 의하여 더 자극을 받고 시를 쓴다는 것이 아픔이 되지만 오늘까지 신앙처럼 끈질기게 매달리게 된 하나의 동기라면 동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2) 선생님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의 역할과 독자와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의 본질은 인간을 위한 것이니만큼 인간을 위한 뜨거운 사랑의 출발이 그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생명의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무게를 지닌 어머님의 모성적인 사랑으로 출발되어져야 하고 또 생명의 뿌리로 내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면 모든 예술의 출발점인 사랑으로 출발 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 사랑은 마치도 나무의 수액처럼 생명재생의 피로 고여서 문학의 위기라고 까지 하는 지금 우리가 처하여 있는 현실에 대한 처방전으로 수혈시켜 정신문화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요즈음 인터냇을 통하여 정보화와, 아노로그, 디지털과 같은 최첨단의 과학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감정도 스케너로 기쁘고 슬픈 감정으로 조절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터냇을 통하여 갖가지 자기가 원하는 정보나 여러 가지 유익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싸이트도 많지만 그 중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감각과 흥미위주의 싸이트도 많아  쉽게 유혹에 빠져들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다양하게 변화는 문화 속에 변화를 요구하는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서 활자 메체인 문학은 자연적으로 독자와의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지난 날 처럼 독자가 찾아주는 문학이 아니라 작가나 시인 스스로가 독자에게로 찾아가는 문학이 되어 여러 형태로<독자 와의 만남>을 이루게 되는 새로운 실험의식으로 신선한 충격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봅니다.

3) 선생님의 초기의 시세계와 현재의 시에 흐름은?

문단 데뷔 이후에 초기의 시세계는 주로 실험의식으로 출발된 난해시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도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가사현상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한번 경험하고 난 이후에 저의 인생관과 시관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1986년도에 영세하였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 그저 선데이 신자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사 현상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경험하면서 중환자실에 입원되어 있으면서 이상하게도 가슴 속 밑바닥에서 부터 견딜 수 없는 뜨거움에 억제 할 수 없어 중환자실 누워 눈물 콧물 흘리며 쓰게 된 것이 우연히 병문한 오신 수녀님에 의하여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눈뜨는 영혼의 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묵상을 위한 기도 시로 출간 되었습니다.
  성바오로 수도원은 메스콤 사목을 하는 수도원이고 그 당시에 출판사의 규정에는 성직자나 수도자 이외는 개인의 출판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시집인  기도와 묵상을 위한 시집이 한번 출판될 때마다 6천부씩 4쇄까지 출판 되었습니다.
사실 초기의 시는 독자를 의식한 시의 형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교통사고가 난 후기의 나의 시는 깊은 좌절과 비애와 아픈 고통을 통하여 새롭게 소생되고자 하는 갈망 속에 환희의 빛과도 같은 실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삶과 문학을 동일시하며 시에 임하고자 애셨습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나답게 성실하게 삶을 살면서 그 삶 안에서 진실 된 내 목소리인 영혼의 울음을 진하게 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나답게 사람값을 하며 살고자 하는 결의로 가득찬 성찰의 도구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불순물로 가득 찬 부끄러운 자신을 아픈 마음으로 걸러내는 참회록과도 같은 작업에 비유 한다면 무엇 보다 순수한 나 자신이 되고 난후에 자기 목소리인 시를 써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지난날에는 사물을 접하고 감동이 오면 즉흥시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능만으로 장기 자랑하는 것 같아  깊이 내적인 뜨거움이 없이는 한 줄도 쓸 수 없고 또 쓰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면 시는 인간의 혼속에서 타는 불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은 타면서 열을 가 해 주고 또 빛을 발하여 주기 때문에 그 불은 시인 자신이 죽음을 감내하여 산화의 몸짓으로 독자의 영혼에 뜨거운 불길로 가장 아픈 가슴으로 가장 슬픈 독자의 영혼에 가서 위안이 되어 산화되어야하는 불길이 되어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의 노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시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수필도 쓰시는데 시와 수필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는 모든 예술의 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시는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장 농축시킨 언어로 조립되고 모자이크되어 많은 상상력과 사상성을 부여해 주는 특질이 있습니다.
이 특질 속에는 자연과 사물이 가시화 되어 오는 죽음의 빛깔까지도 시랑으로 수용하여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의 표출로 걸러내어 새 생명이나 다름없는 시를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 자신은 끝없이 열린 영혼의 세계에서 우주의 신비 까지도 포괄적인 순수한 사랑으로 껴안아 보듬고 존재의 양식이 되는 사랑의 메시지로 세상 속에 혹은 독자에게 전달되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묘미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문단에 데뷔한 문학 장르는  시입니다.
그 동안 시를 쓰면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한계점에 스스로 눌러있는 닫혀있는 것 같은 갑갑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필은 어떤 형식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붓가는대로 생각이나 감정을 다 표출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끼며 수필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러 청탁에 의해서 쓸 때도 있고 시로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수필에 풀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는 분홍빛 베일 속에 숨겨있다면 수필은 자기의 단점까지도 지상에 두고 고백성사를 보듯이 부끄러움이 없이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순수하고 진실 된 문학 장르로 생각되기에 즐겨 수필을 쓰며 위안을 받습니다.

5) 세계적인 음악제에 선생님의 시가 곡이 붙여저 발표 되었다언데 언제이며 작곡가는 누구신지요.?

네, 너무도 뜻밖 이였다.
다름슈타트 세계적인 음악제가 독일에서 2005년 5월에 열렸는데 유일하게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1961년도에 윤이상 선생님께서 발표하셨고, 두 번째로 작곡가 안일웅 교수께서 발표하셨습니다.
그때 저의 시 <생명의 노래 1>가 작곡되어 다른 작품과 함께 발표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노래는 1980년도에 교통사고 이후 생명의 신비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면서 연작시를 썼던 것입니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주권자이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감사가 늘 마음속에 밑자리 하고 있기 때문 이였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연작시를 중단하지 못하고 쓰면서 이런 생각을 종종합니다.
생명에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의 은밀한 섭리와 계획이 숨어있는 질서와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질서 속에는 생명의 법칙이 사랑으로 숨 쉬고 있고 그 사랑이 모든 예술의 출발점이 되어지는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13번째 출간된 <참으로 소중한 당신이 계시기에>란 시집에 작곡된 시30편 정도를 부록으로 게재 하였습니다.
저의 시들을 작곡하신 교수님은 아직 한번도 상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전북대학 음악과 예술대학 작곡가이신 이종록 교수께서 제 시집을 보고 많은 시에 곡을 달아서 우편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 예술 시곡 연구 감독이신 권오철 선생님과 부산대학에 출강하시는 박미혜 교수께서는 <부산찬가>등에 곡을 달아 주셨습니다.


작곡= 안일웅  작사= 박송죽< 작곡을 수록할 경우 참으로 소중한 시집에 있으니 참조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노래

생명은
청청한 대숲 바람으로 온다.
천맥<天脈>을 이어
가슴 출렁이는 꽃빛,
고요히 다가오는 새벽 종소리
때 묻지 않는 순결한
설레임의 환희로 온다.

생명은
타는 불꽃으로 온다.
활활 타는 불꽃 사랑
목숨 내어준
뼛속까지 아린 생애.
사리<舍利>가 된
통절한 아픔.
향유로 타는 눈물 마르지 않는
불꽃 사랑으로 온다.


생명은
정갈한 새벽으로 온다.
설레임의 환희로 되살아나는
생명의 향기.
무량한 神의 자비
소리 없는 깃발,
저만치 가까이 다가와서는 침묵하는
침묵하다가는 거기 그렇게
뜨겁게 살 섞어
영원 층천<層天> 지평을 여는
동트는 새벽으로 온다.

생명은
천지간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온다.
캄캄하게 쓰러진 어둠 아닌
볼수록 아름답고
볼수록
따스한 가슴과 가슴
때 묻지 않는 마음으로 조율된
사랑의 울림으로 온다.


6)  선생님께선 다방면에 제주가 많으신걸로 압니다. 그림도 그리시는 줄 알고 있는데 그림 공부는 별도로 하셨는지요?

그림 공부는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그림 문예부에 있으면서도 미술부에 가서 미술 선생님의 지도는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때때로 꿈을 꾸듯이 환상적인 응답 없는 공상에 젖어 아마추어보다도 더 미숙한 형체와 색체로 잘 표현되어지지 않는 서툰 화필로나마 그림 그리기를 좋아 합니다.
그러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저마다의 진솔한 삶의 모습으로 일생이라는 화폭에 어쩌면 흔적을 지우며 남기며 수채화와도 같은 그림 한 장 남기고 언제고 훌쩍 이 지상을 떠나는 그런 인생 여정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내면의 진실성을 바탕 두고 삶을 진진하게 얽어가는 것이 저마다의 삶의 모습이며 그 삶의 자체가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어 사랑의 감흥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체온으로 다가가는 온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저는 서툰 화필로 묵화를 그리는 것은 하이얀 화선지에 먹물 한 방울 떨어지면 자기 의도와는 다른 형이상학적인  사물의 신비가 형상화 되는 것에 매료되어 묵화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문학의 길을 가면서도 늘 잠재의식 속에 그림 그리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쁘게  살아오느라 정착 그림을 그릴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고 변명 같지만 오늘까지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큰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별을 보고 새벽에 집을 나갔다 학교에서 별을 보고 돌아오는 큰 아들을 기다리면서 무엇 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가지 공예를 처음시작 하였습니다.  바가지 공예는 예리한 조각도를 가지고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조름에 못 견디어 손가락에 뼈까지 들어나는 큰 상처를 입고 그 다음에 서툰 화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그린 서툰 그림들이 한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방치되어 잊었던 것이 공직 생활에서 과로로 쓸어져 8년간이나 병석을 지키다 돌아가신 남편의 유품들을 버리다 우연히 라면 박스에 들어 있는  그림 뭉치를 발견 하였습니다.
지금은 습작하고 싶어도 오랜 세월 동안 절필하였기 때문에 손이 굳어져서 다시 그릴 수도 없기에 그 중에서 골라서 12번째 출간한<내 삶의 예정표는 당신만이 아시나니>라는 시집에 부서마다 수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 보다 더 못한 수준의 그림이지만 남아 있는 그림은 기회를 보아서 화집하나 출간할까 합니다.

7) 박선생님께선 자제분을 너무 훌륭하게 키우셨는데 자재 분은 몇 분이시며 메스콤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만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김 태국 박사”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그 큰 아들인 김 박사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씀하여 주시면 합니다.

미국 하바드대학교수와 서울대학 겸인 교수를  거쳐 지금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인 큰 아들과 성직자인 사제의 길을 가고 있는 둘째 아들과 교직 생활을 하는 막내딸로 2남1녀 입니다.
메스콤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하셨는데  2005년도에 미국의 저명한 과학지인(싸이언스)지에 자석의 원리를 이용하여 세포에 약물을 주입하여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을 개발 하였고 2006년 7월 1일자에 미국의 과학지인 (네이처)에서 침해 예방과 인간노화 세포를 억제 시키는 후보물질인 신약을 개발 하였습니다.

박송죽 선생님께서는 제1시집 “보랏빛 의상”에서 제13시집 “소중한 당신이 계시기에”이르기 까지 13권의 시집과 “운명의 올을 풀면서” 사랑하므로 아름다워라“라는 수필집을 상재하신 박 선생님.
우리 부산문단의 거목이신 시인이자 수필가이신 박 선생님의 문학세계가 시와 수필과 노래로 승화되어 우리가 사는 혼탁한 세상에 아름답게 펼쳐지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시의 노래, 수필의 촉촉한 감동으로 살아나 박 선생님의 인생이 문학 뿐 만 아니라 신앙생활로 빛납니다.
손끝에서 피어올린 묵화의 난초 보다 더 진한향기로 다가오시는 박 선생님 . 세계적인 석학으로 길러내신 김태국 박사에 이르기까지 박 선생님의 성공적인 삶과 문학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건강과 문운을 빌며 대담을 마실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및 저서 소개는 조 선생님께서 알아서 해 주세요=











  시와 수필 문학 통권 11호 2007년 겨울호  

한국 서정시의 대명사
      박송죽 시인을 찾아서
              조선영: 본지 명예기자 와의 대담

<1>박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여류 작가로서 가장 오래 시를 쓰시며 문단생활을 하신 줄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시 작업을 했으며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네, 반갑습니다. 먼저 지면을 할애 해주신 시와 수필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58년도에 <보라 빛 의상>이라는 처녀시집을 상재하고 난후에 지금은 돌아가신 고 김춘수 선생님께서 추천하여 주시어 <현대시학>을 통하여 문단에 데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를 쓰개 된 동기라면 처음에 시가 좋아서 시를 자주 접하다가 제가 중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백일장에 나가서 <장원>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 선생님들의 칭찬에 의하여 더 자극을 받고 시를 쓴다는 것이 아픔이 되지만 오늘까지 신앙처럼 끈질기게 매달리게 된 하나의 동기라면 동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2) 선생님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의 역할과 독자와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의 본질은 인간을 위한 것이니만큼 인간을 위한 뜨거운 사랑의 출발이 그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생명의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무게를 지닌 어머님의 모성적인 사랑으로 출발되어져야 하고 또 생명의 뿌리로 내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면 모든 예술의 출발점인 사랑으로 출발 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 사랑은 마치도 나무의 수액처럼 생명재생의 피로 고여서 문학의 위기라고 까지 하는 지금 우리가 처하여 있는 현실에 대한 처방전으로 수혈시켜 정신문화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요즈음 인터냇을 통하여 정보화와, 아노로그, 디지털과 같은 최첨단의 과학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감정도 스케너로 기쁘고 슬픈 감정으로 조절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터냇을 통하여 갖가지 자기가 원하는 정보나 여러 가지 유익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싸이트도 많지만 그 중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감각과 흥미위주의 싸이트도 많아  쉽게 유혹에 빠져들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다양하게 변화는 문화 속에 변화를 요구하는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서 활자 메체인 문학은 자연적으로 독자와의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지난 날 처럼 독자가 찾아주는 문학이 아니라 작가나 시인 스스로가 독자에게로 찾아가는 문학이 되어 여러 형태로<독자 와의 만남>을 이루게 되는 새로운 실험의식으로 신선한 충격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봅니다.

3) 선생님의 초기의 시세계와 현재의 시에 흐름은?

문단 데뷔 이후에 초기의 시세계는 주로 실험의식으로 출발된 난해시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도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가사현상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한번 경험하고 난 이후에 저의 인생관과 시관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1986년도에 영세하였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 그저 선데이 신자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사 현상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경험하면서 중환자실에 입원되어 있으면서 이상하게도 가슴 속 밑바닥에서 부터 견딜 수 없는 뜨거움에 억제 할 수 없어 중환자실 누워 눈물 콧물 흘리며 쓰게 된 것이 우연히 병문한 오신 수녀님에 의하여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눈뜨는 영혼의 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묵상을 위한 기도 시로 출간 되었습니다.
  성바오로 수도원은 메스콤 사목을 하는 수도원이고 그 당시에 출판사의 규정에는 성직자나 수도자 이외는 개인의 출판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시집인  기도와 묵상을 위한 시집이 한번 출판될 때마다 6천부씩 4쇄까지 출판 되었습니다.
사실 초기의 시는 독자를 의식한 시의 형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교통사고가 난 후기의 나의 시는 깊은 좌절과 비애와 아픈 고통을 통하여 새롭게 소생되고자 하는 갈망 속에 환희의 빛과도 같은 실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삶과 문학을 동일시하며 시에 임하고자 애셨습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나답게 성실하게 삶을 살면서 그 삶 안에서 진실 된 내 목소리인 영혼의 울음을 진하게 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나답게 사람값을 하며 살고자 하는 결의로 가득찬 성찰의 도구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불순물로 가득 찬 부끄러운 자신을 아픈 마음으로 걸러내는 참회록과도 같은 작업에 비유 한다면 무엇 보다 순수한 나 자신이 되고 난후에 자기 목소리인 시를 써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지난날에는 사물을 접하고 감동이 오면 즉흥시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능만으로 장기 자랑하는 것 같아  깊이 내적인 뜨거움이 없이는 한 줄도 쓸 수 없고 또 쓰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면 시는 인간의 혼속에서 타는 불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은 타면서 열을 가 해 주고 또 빛을 발하여 주기 때문에 그 불은 시인 자신이 죽음을 감내하여 산화의 몸짓으로 독자의 영혼에 뜨거운 불길로 가장 아픈 가슴으로 가장 슬픈 독자의 영혼에 가서 위안이 되어 산화되어야하는 불길이 되어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의 노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시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수필도 쓰시는데 시와 수필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는 모든 예술의 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시는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장 농축시킨 언어로 조립되고 모자이크되어 많은 상상력과 사상성을 부여해 주는 특질이 있습니다.
이 특질 속에는 자연과 사물이 가시화 되어 오는 죽음의 빛깔까지도 시랑으로 수용하여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의 표출로 걸러내어 새 생명이나 다름없는 시를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 자신은 끝없이 열린 영혼의 세계에서 우주의 신비 까지도 포괄적인 순수한 사랑으로 껴안아 보듬고 존재의 양식이 되는 사랑의 메시지로 세상 속에 혹은 독자에게 전달되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묘미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문단에 데뷔한 문학 장르는  시입니다.
그 동안 시를 쓰면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한계점에 스스로 눌러있는 닫혀있는 것 같은 갑갑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필은 어떤 형식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붓가는대로 생각이나 감정을 다 표출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끼며 수필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러 청탁에 의해서 쓸 때도 있고 시로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수필에 풀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는 분홍빛 베일 속에 숨겨있다면 수필은 자기의 단점까지도 지상에 두고 고백성사를 보듯이 부끄러움이 없이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순수하고 진실 된 문학 장르로 생각되기에 즐겨 수필을 쓰며 위안을 받습니다.

5) 세계적인 음악제에 선생님의 시가 곡이 붙여저 발표 되었다언데 언제이며 작곡가는 누구신지요.?

네, 너무도 뜻밖 이였다.
다름슈타트 세계적인 음악제가 독일에서 2005년 5월에 열렸는데 유일하게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1961년도에 윤이상 선생님께서 발표하셨고, 두 번째로 작곡가 안일웅 교수께서 발표하셨습니다.
그때 저의 시 <생명의 노래 1>가 작곡되어 다른 작품과 함께 발표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노래는 1980년도에 교통사고 이후 생명의 신비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면서 연작시를 썼던 것입니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주권자이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감사가 늘 마음속에 밑자리 하고 있기 때문 이였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연작시를 중단하지 못하고 쓰면서 이런 생각을 종종합니다.
생명에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의 은밀한 섭리와 계획이 숨어있는 질서와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질서 속에는 생명의 법칙이 사랑으로 숨 쉬고 있고 그 사랑이 모든 예술의 출발점이 되어지는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13번째 출간된 <참으로 소중한 당신이 계시기에>란 시집에 작곡된 시30편 정도를 부록으로 게재 하였습니다.
저의 시들을 작곡하신 교수님은 아직 한번도 상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전북대학 음악과 예술대학 작곡가이신 이종록 교수께서 제 시집을 보고 많은 시에 곡을 달아서 우편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 예술 시곡 연구 감독이신 권오철 선생님과 부산대학에 출강하시는 박미혜 교수께서는 <부산찬가>등에 곡을 달아 주셨습니다.


작곡= 안일웅  작사= 박송죽< 작곡을 수록할 경우 참으로 소중한 시집에 있으니 참조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노래

생명은
청청한 대숲 바람으로 온다.
천맥<天脈>을 이어
가슴 출렁이는 꽃빛,
고요히 다가오는 새벽 종소리
때 묻지 않는 순결한
설레임의 환희로 온다.

생명은
타는 불꽃으로 온다.
활활 타는 불꽃 사랑
목숨 내어준
뼛속까지 아린 생애.
사리<舍利>가 된
통절한 아픔.
향유로 타는 눈물 마르지 않는
불꽃 사랑으로 온다.


생명은
정갈한 새벽으로 온다.
설레임의 환희로 되살아나는
생명의 향기.
무량한 神의 자비
소리 없는 깃발,
저만치 가까이 다가와서는 침묵하는
침묵하다가는 거기 그렇게
뜨겁게 살 섞어
영원 층천<層天> 지평을 여는
동트는 새벽으로 온다.

생명은
천지간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온다.
캄캄하게 쓰러진 어둠 아닌
볼수록 아름답고
볼수록
따스한 가슴과 가슴
때 묻지 않는 마음으로 조율된
사랑의 울림으로 온다.


6)  선생님께선 다방면에 제주가 많으신걸로 압니다. 그림도 그리시는 줄 알고 있는데 그림 공부는 별도로 하셨는지요?

그림 공부는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그림 문예부에 있으면서도 미술부에 가서 미술 선생님의 지도는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때때로 꿈을 꾸듯이 환상적인 응답 없는 공상에 젖어 아마추어보다도 더 미숙한 형체와 색체로 잘 표현되어지지 않는 서툰 화필로나마 그림 그리기를 좋아 합니다.
그러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저마다의 진솔한 삶의 모습으로 일생이라는 화폭에 어쩌면 흔적을 지우며 남기며 수채화와도 같은 그림 한 장 남기고 언제고 훌쩍 이 지상을 떠나는 그런 인생 여정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내면의 진실성을 바탕 두고 삶을 진진하게 얽어가는 것이 저마다의 삶의 모습이며 그 삶의 자체가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어 사랑의 감흥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체온으로 다가가는 온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저는 서툰 화필로 묵화를 그리는 것은 하이얀 화선지에 먹물 한 방울 떨어지면 자기 의도와는 다른 형이상학적인  사물의 신비가 형상화 되는 것에 매료되어 묵화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문학의 길을 가면서도 늘 잠재의식 속에 그림 그리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쁘게  살아오느라 정착 그림을 그릴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고 변명 같지만 오늘까지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큰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별을 보고 새벽에 집을 나갔다 학교에서 별을 보고 돌아오는 큰 아들을 기다리면서 무엇 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가지 공예를 처음시작 하였습니다.  바가지 공예는 예리한 조각도를 가지고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조름에 못 견디어 손가락에 뼈까지 들어나는 큰 상처를 입고 그 다음에 서툰 화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그린 서툰 그림들이 한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방치되어 잊었던 것이 공직 생활에서 과로로 쓸어져 8년간이나 병석을 지키다 돌아가신 남편의 유품들을 버리다 우연히 라면 박스에 들어 있는  그림 뭉치를 발견 하였습니다.
지금은 습작하고 싶어도 오랜 세월 동안 절필하였기 때문에 손이 굳어져서 다시 그릴 수도 없기에 그 중에서 골라서 12번째 출간한<내 삶의 예정표는 당신만이 아시나니>라는 시집에 부서마다 수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 보다 더 못한 수준의 그림이지만 남아 있는 그림은 기회를 보아서 화집하나 출간할까 합니다.

7) 박선생님께선 자제분을 너무 훌륭하게 키우셨는데 자재 분은 몇 분이시며 메스콤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만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김 태국 박사”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그 큰 아들인 김 박사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씀하여 주시면 합니다.

미국 하바드대학교수와 서울대학 겸인 교수를  거쳐 지금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인 큰 아들과 성직자인 사제의 길을 가고 있는 둘째 아들과 교직 생활을 하는 막내딸로 2남1녀 입니다.
메스콤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하셨는데  2005년도에 미국의 저명한 과학지인(싸이언스)지에 자석의 원리를 이용하여 세포에 약물을 주입하여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을 개발 하였고 2006년 7월 1일자에 미국의 과학지인 (네이처)에서 침해 예방과 인간노화 세포를 억제 시키는 후보물질인 신약을 개발 하였습니다.

박송죽 선생님께서는 제1시집 “보랏빛 의상”에서 제13시집 “소중한 당신이 계시기에”이르기 까지 13권의 시집과 “운명의 올을 풀면서” 사랑하므로 아름다워라“라는 수필집을 상재하신 박 선생님.
우리 부산문단의 거목이신 시인이자 수필가이신 박 선생님의 문학세계가 시와 수필과 노래로 승화되어 우리가 사는 혼탁한 세상에 아름답게 펼쳐지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시의 노래, 수필의 촉촉한 감동으로 살아나 박 선생님의 인생이 문학 뿐 만 아니라 신앙생활로 빛납니다.
손끝에서 피어올린 묵화의 난초 보다 더 진한향기로 다가오시는 박 선생님 . 세계적인 석학으로 길러내신 김태국 박사에 이르기까지 박 선생님의 성공적인 삶과 문학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건강과 문운을 빌며 대담을 마실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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