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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원로 시인 탐방

   ==예술 부산   2008년  5월호==


            시인의 꽃등 하나 가슴에 달고
                                                    김 양 희
  올해도 새봄을 맞은 산수유 꽃이 노랑나비처럼 나풀대고 있었다. 이제 곧 청산에 혼불인 듯 진달래가 타오르리라. 때 되면 어김없이 가고 오는 계절처럼, 누에고치가 실을 뿜듯이, 마음만 먹으면 좋은 글이 술술 나오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데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노작가의 표현대로 쓰는 일이란 처음엔 천복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형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글 쓰는 행위를 통하여 나를 추스르고 그 연민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작은 정으로 머문다면 미완성의 삶일지라도 살아야 하고 써야할 이유가 있지 않은가. 기실 시인이란 신을 닮으려고 하는 가당치 않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막막한 백지를 채워야 하는 그 창조의 아픔. 시에도 자원이란 게 있다면 그건 갈증일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그 갈증. 시업(詩業)을 가진 어느 누군들 그 목마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봄의 한가운데서 운애(雲涯) 박송죽(朴松竹)선생님을 만났다. 언제 봐도 유리알처럼 곱고 단아한 모습과 가는 몸매에 배인 청초함이 천성 시인이다. 가끔 외로움을 닮은 미소가 쓸쓸함을 가져올 뿐 아직은 일흔 고개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1958년 < 보랏빛 의상>이란 처녀 시집을 상재한 후 <현대시학>을 통해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니 올해로 시력(詩歷)50년을 맞았다. 이 땅에서 매화가 오십 번이나 피고 질 동안 시업에만 몰두해 온 저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랜 세월 시를 써 올 수 있었음은 똑 같은 세월 고통과 절제를 감내했음을 뜻한다.
  반세기 전 부산 문단의 풍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등단이 곧 완장으로 아는 세태에 와 있으니 수십 년 전 세월을 누가 말해줄 것인가. 당시 활약하던 문인들을 기억함은 그가 이미 부산 문단의 맏언니로 살아왔음을 입증해 준다. 50년대의 사회상은 한국동란이 스치고 간 피폐한 상황이었지만 등단하던 그 시절에만 해도 여류가 없어 모임에도 나가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부산에선 한무숙 이영도 선생이 활동할 시기였고 당시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동래 ‘애일당’에서는 이영도선생과 자고 오기도 자주 했다니 두 여류가 함께 밤을 지새우며 도란도란 시심을 키우던 등불 같은 풍경 하나를 그려본다.
  이미 예인으로 타고난 그의 재능과 정열은 시작(詩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화선지의 여백에 먹물의 형상을 그려낸 그림솜씨나 불의 예술에 심취해 초벌 도자기에 새긴 멋진 글씨, 날카로운 조각도로 일군 바가지공예 등은 이미 수준급의 감각을 자랑한다. 일찍이 청마선생이 “아깝다”라고 하신 말뜻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인이야 속으로 타는 열정만 가지고 객기를 부렸다고 하나 이미 그 솜씨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풍차는 돌고 있다’ ‘저 어둠이 내게 와서’ ‘푸른 침묵 속에 흐르는 그대 음성’ 등 그간 열세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수필집을 상재했으니 어떠한 신산의 세월에도 멈추지 않았던 시혼은 문학이 바로 그 삶을 지탱하는 힘이요 버팀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력 반세기를 접는 올해에는 틈틈이 그려왔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시화집을 만날 수가 있다. 그동안 방송매체에서 방영된 영상시와 자작시, 그림들을 손수 편집하고 배열한 ‘수채화 속의 그림 한 폭’이란 열네 번째의 작품집이 그것이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말씀(言)의 사원(寺)을 짓는다는 뜻이니 곧 기도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말이 아닐까. 박송죽 시인을 떠올릴 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신앙시이다. 50대에 일어난 지독한 교통사고의 상흔은 그에게 뜨거운 가슴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하고 종교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아픔 속에서도 단 한순간도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해주셨음에 대한 감사는 절대자에게로 향하는 불같은 믿음과 신념을 심어주었다.
             ‘믿음은 영원한 생명의 마지노선이다.
             내 입이 부르짖을 때 / 내 혀가 찬양드릴 때
             믿음으로 스파이크 되는 / 죽어도 영원히 살
             생명 부활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다. ‘         -  믿음은  -


  신에게 바치는 숭엄한 찬양이요 영혼의 갈구인 신앙시는 생명의 경계선을 넘어본 사람만이 그 공감대를 갖기에 감성만으로는 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종교시는 울지 않고는 못쓴다. 실컷 울고 나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눈동자처럼 자신을 지켜주신 하느님이라 믿기에 받은 달란트를 봉헌하는 헌신 또한 눈물겨웠다. 쓰임 받기 위해서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체험을 각 성당을 순회하며 강연할 때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신자재교육이나 가르침 봉사를 통해 신심은 더욱 절실해졌고 ‘눈 뜨는 영혼의 새벽’ '생의 한가운데로 스치는 불의 바람이 되어‘ ’내 삶의 예정표는 당신만이 아시나니‘ ’참으로 소중한 당신이 계시기에‘ 등의 신앙시집을 낳았다.
  사경을 헤맨 교통사고의 상처와 오랜 기간 남편의 간병 등 고통 속에 승화된 신앙의 힘이 자제분에 대한 축복으로 열매 맺었을까.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큰아들은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학자로 우뚝 섰다. 둘째아들은 사랑과 희생으로 구도자의 길을 걷는 사제가 되었으니 어머니의 희생과 극기는 참으로 위대하다. 눈물로 치마폭을 적신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히포의 아우구스티노를 위대한 성인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수상경력 또한 문인으로 걸어 온 발자취요 흔적이다. 91년도 세계시인상을 비롯해 부산여성문학상, 부산문학상, 부산시인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니 문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왔음에 대한 격려가 아닐까.
  한을 구슬로 닦아온 여인, 그의 삶에는 특별한 향기가 있다. 떠듬떠듬 어눌하게, 천천히 길게, 그러나 뜨겁게 시를 쓰는 시인. 우리가 한편의 시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이 아닐지. 그는 그리스도를 높임으로서 사물과 신을 높이는 미덕을 가진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과 시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이다.
  화려한 꽃등은 초파일의 사찰에만 있음이 아니다. 시업이 바로 메마른 삶에 온기를 심어 주는 한 개 불멸의 꽃등이다. 사랑과 감흥으로 다가와 누군가의 아픈 가슴에 생의 따스한 모닥불을 지피는 위로가 되어준다면 그게 바로 초롱 빛처럼 고운 등불을 밝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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