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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모태 적 고독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사유



   모태 적 고독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사유
   ―신앙 시로 풀어낸 박송죽 시인의 문학적 삶에 대하여  



                                         박정선(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1 시와 시인 그리고 역사

   ‘시인은 가장 문명화된 사람이면서 가장 원시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불멸의 진리로 통한다. 언어는 본래 원시 시대에는 비유적이고 신화적이었으나 차츰 관념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는 인간의 본질과 떨어질 수 없다는 신념을 내포하고 있다. 시는 인간의 내면을 암시하는 수단이며 인간의 깊은 내면은 곧 인간의 원시적인 성질인 탓이다. 원시 시대에 인간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방법은 주문을 읊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가 철학이나 과학처럼 관념 전달의 목적을 띤다면 인간은 자기 본질을 확인할 길을 잃게 되는 지경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문예비평사적으로 볼 때 시를 정서의 표현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문학 사상이 모방론에서 표현론으로 옮겨간 이후부터이다. 모방론은 사물 그 자체, 우주, 자연의 실제, 근본원리, 이념, 진리를 문학으로 복사 내지 구현, 재현한다는 사상이다. 이와 달리 표현론에서는 우주 자연 및 인간의 근본적인 진리구현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시인이 지닌 상상의 힘에 의하여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시詩인데, 그런 진리의 발견이 보편적인 이성이 아니라 극도로 주관적인 상상에 의한다고 주장한 것이 표현론의 특징이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아직도 시에 대한 중요한 관점으로 남아 있는 바, 시인의 각자 개인적인 개성 즉 퍼스날리티(personality)는 주관과 주체성 그리고 자아라는 세계에서 자신의 정서를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시인의 독점물인 것처럼, 시인들이 점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성격을 규정짓게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을 모두에서부터 하게 된 것은 한국 문단의 원로로 박송죽 시인의 무게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 까닭이다. 그러나 한 시인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도 한평생 시를 쓰면서 살아온 老 시인을 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雲涯 박송죽 시인, 그는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 현대문학이 시작된 이래 한국문단의 맥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1930년대의 시문학파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순수시 운동, 그리고 이를 뛰어 넘은 모더니즘의 출현에 이어 생명파와 청록파가 등장하여 일구어 놓은 한국시사의 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의 생애는 또한 우리나라에 있어서 격랑의 시대로 흘러간 20세기와 21세기의 양대 역사를 잉태하고 있다.
   1936년에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을 우울한 일제강점기에 보내야 했고,  6·25로 명명되는 한국전쟁을 몸으로 체험해야 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남으로 피난을 와 부산에 정착하여, 4·19의 의분을 거쳐 다시 5·16 군사쿠데타를 겪어야 했고 제2의 군사쿠데타 5·18을 겪었다. 문학은 아무래도, 더욱이 시는 독재의 치명적인 메커니즘에 따른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고 정화하고, 정수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존재한다. 따라서 그는 정신적으로 실존적으로 생명의 본질을 체험했을 것이며 그의 시적 언어는 생명의 불꽃으로 타오르기에 알맞았다. 즉 불꽃처럼 생명에 대한 사유가 불타올랐던 것이다.
   그는 시인이기 전에 여성이며 어머니이다. 불꽃처럼 타오른 사유의 근원은 엄연히 모성에서 출발하며 모성은 선천적으로 눈물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상식 아닌 상식으로 존재한다.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여 찬란한 빛(지구) 가운데 탄생시키는 일은 일찍이 신으로부터 벌에 대한 대가로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신은 신성을 어긴 아담과 하와 커플에게 생명 탄생을 기분 좋게 선물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인간(자식)에 대한 연민과 불안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한 원초적인 사유에 매달려 끝까지 고독과 그리움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파란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반세기의 삶을 시로 지탱해 온 박송죽 시인은 본능적으로 고독과 그리움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인은 이것을 신께 바치는 노래로 변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2. 박송죽과 타고르 ― 그 영적인 생명의 교유

  문학은 인문학적 성찰로서 가장 이상적인 삶, 인간에게 가장 충실하고 성실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신앙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철학이 결국 문학, 특히 시와 동일한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신뢰할 만하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한국 문단의 원로 박송죽 시인을 생각하면 시는 무엇이며 사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가 걸어온 발자국 때문이다. 그의 발자국은 점점이 눈물인가 하면 점점이 뜨거운 불덩이로 타오른 절규였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며 인간은 왜 시를 써야하는지를 뼈 속으로, 아니 쿵쿵 뛰는 심장의 맥박으로 느끼게 해 준 탓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명제는 곧 선천적일 만큼 그의 절대적인 신앙심에서 연유한다.
   신앙심은 기도이며 그의 기도는 시로 직결된다. 곧 시가 기도이며 기도가 시로 변용되는 것인데 여기서 망설임 없이 시성으로 통하는 묵상과 명상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를 떠올리게 한다. 잠시 타고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타고르를 시성詩聖이라고 부르는 것은 곧 성자를 의미한다. 송가로 부르는 시뿐만 아니라 성자를 초월하는 모든 행위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라빈드라나드를 읽습니다. 그의 한 줄을 읽는 다는 것은 이 세상의 온갖 번뇌를 잊게 되는 것이니까요”라는 뱅골의 어느 의사의 고백은 타고르의 성자적인 세계를 잘 말해준다.
   뱅골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타고르는 젊었을 때 정원에 매일매일 하루 종일 앉아 있었으며,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3시부터 두 시간 이상을 묵상에 잠겨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묵상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고 한다. 때론 강 물 위에서도 “사공들은 그가 다시 여정을 계속할 수 있기까지 8시간이나 기다렸다”(󰡔기탄잘리󰡕, 119면)고 할 정도로 신을 향한 묵상과 명상에 몰입했다. 당시 인도인들이 “우리의 성자들 가운데서 제 일인자”(118면)라고 타고르를 선망했던 것은 역시 신앙 시 때문이었고 그의 시는 경經에 다름 아니었다.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여 빛과 어둠, 영원과 현실을 아침과 저녁을 대립시키면서 신의 섭리와 진리와 사랑을 중심으로 영혼과 생명을 노래한 타고르는 결국 신앙 시로 세계를 감동으로 몰아넣었고 신께 바치는 시 󰡔기탄잘리󰡕(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노벨문학상(1913)을 수상했다. 그러니까 타고르와 박송죽 시인의 신앙시가 서로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실 신앙 시는 신앙의 대상, 절대자가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통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신에 대한 연모가 인종과 시대를 불문하고 서로 유사한 까닭이다.
   문학적 경륜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아픔도 박송죽 시인과 타고르는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사람 다 식민지라는 조국의 비운을 체험했고, 두 사람 다 10대 청소년시절부터 시문학에 입문한 탓이다. 타고르는 15세에 시집을 출간했으며, 박송죽은 여고시절 시집을 출간했다. 타고르는 청년시절에 자연물과 연애시를 많이 썼으며 인도 독립운동에 기여할 정도로 참여시도 많이 썼다. 박송죽도 신앙시를 쓰기 전에는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적인 시, 초현실주의의 난해한 시를 쓰면서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기도 했다. 당시 박송죽의 시에서는 시대적인 어떤 힘이 느껴졌다. 때로는 분노와 울분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모두 정의가 뿜어내는 열기에 다름 아니었다.

    그 당시는 공직생활을 할 때인데 5,16 쿠데타 이후 군이 모든 기관을 장악하여 ‘혁명      공약’을 아침마다 선창하고 군대처럼 무조건 복종하며 죽어 살아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    다. 사회과에서 부녀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잡혀온 창녀들을 빨리 처리해 달라고    결재서류를 지사실에 올렸으나 이틀 동안이나 미해결되어 저는 도지사 비서실의(당시에     행정도 모르는 군인들이 총을 차고 비서실에 상주하고 있었음) 서류함을 엎어버릴 정도로    분노했고, 공직에 있으면서 데모 대열에 섰다가 다행히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밝혀지지 않    았지만 지금 한일연구소 소장님이신 스승과 함께 하루 동안 구치소 신세를 졌었지요. 철    창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던 그 시절에 쓴 시들을 모아서 출간한 것이 󰡔열쇠를 찾습니다    󰡕라는 시집입니다.  
                         󰡔계간 에세이문예󰡕, 2009. 봄호. 특별대담 중에서  

    1986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비로소 생명과 신을 발견한 박송죽은 자신도 모르게 신앙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고백이 여기저기서(인터뷰 내용) 눈에 띈다. 쓰는 것이 아니라 써졌다고 한다. 신앙 시는 기도 그 자체인 탓에 단순하지만 진솔한 말들이 나열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의 궁극적인 길을 찾는 사유가 흐르고 있다. 타고르의 시를 읽고 보통 놀라게 된 것은 “그처럼 평이하고 단순한 말로 어떻게 그처럼 오묘한 사상의 가락을 담았느냐”에 있다. 따라서 시성이라는 거룩한 호칭과 세계인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것은 타고르의 시가 보여준 인간의 본능적인 내면과 절실한 생의 긍정에 공감한 탓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존재의 불확실성에서 확실한 존재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주목할 것은 타자를 불러들여 나와 가까운 이웃으로(사랑)으로 승화한 까닭이다.  
   등단 초기에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시를 썼던 박송죽 시인이 신앙 시를 쓰게 된 것은 앞에서 밝힌 대로 1986년 죽음에 이를 정도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부터이다. 공교롭게도 가톨릭 신자로 영세를 받은 것도 교통사고를 당한 해였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주치의로부터 뇌수술을 받지 않으면 사고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무서운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뇌수술을 받지 않았다. 링거로 목숨을 연명하면서 그분(신)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함에 가득차 있었다. 그때 자신도 모를 강렬한 힘이 뜨겁게 작용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를 썼다. 그 후 새벽 4시만 되면 깨어나 마치 자석에 끌리듯 성당으로가 장애자를 위해 마련해 놓은 맨 앞자리에 앉아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계속 폭포수처럼 시를 썼다. 그렇게 쓴 시가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출판해준 󰡔눈 뜨는 영혼의 새벽󰡕, 󰡔생의 한가운데로 스쳐가는 불의 바람이 되어󰡕라는 명상 시집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심이나 종교를 개인의 기호적인 사생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느낀 바를 쓴 걸 보면 ‘한국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만큼 진지하고 순수하고 집중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온 힘을 다 바쳐서 생명을 노랬다. “생명은 청정한 대숲 바람으로, 천맥天脈을 이어 가슴 출렁이는 꽃빛으로, 그런가 하면 고요히 다가오는 새벽 종소리로, 때 묻지 않는 순결한 환희로, 그리고 타는 불꽃으로” 온다고 진술한 것이다.        

         생명은 /        청정한 대숲 바람으로 온다.
         천맥을 이어 가슴 출렁이는 꽃빛,
         고요히 다가오는 새벽 종소리
        때 묻지 않는 순결한 설렘의 환희로 온다.
         생명은, 타는 불꽃으로 온다.
         (…)
         생명은, 천지간,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온다.
         캄캄하게 쓰러진 어둠이 아닌
        (…)
         따스한 가슴과 때 묻지 않는
        마음의 조율된 사랑의 울림으로 온다.

                                         「생명의 노래」 중에서

        나의 생명의 모든 현은 조율되었습니다.
         나의 주인이여, 당신이 그 현을 탄주할 때마다
        사랑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R. 타고르, 연작시 󰡔길 잃은 새󰡕 315번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이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고 또
        항상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작은 갈 피리를 님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로 나르셨습니다.
         그리고 님은 그것을 통해 항상 새로운
        선율을 불어내셨습니다.
         (…)
                                 R. 타고르,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중에서

  작곡가 안일웅이 작곡하여 독일 다름슈타트 세계음악제에서 연주된 시 「생명의 노래」는 심층적으로 점점 강해지는 점강법으로 진행되면서 강렬한 리듬을 갖고 있다. 강렬한 리듬은 곧 강렬한 호소력을 지닌다. 즉 생명의 속성에 대하여 시인은 있는 힘을 다하여 호소하려고 노력한다. 대숲바람, 꽃빛, 새벽 종소리, 환희, 불꽃 등 열거법으로 묘사되는 생명은 생물적인 생명을 뛰어 넘어 신에게 다가가는 초월적인 생명이다. 형이상학적으로 신과 생명을 생각할 때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다 하여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신과 가까워져가는 생명은 대숲바람처럼 일어나 꽃빛과 새벽 종소리와 같은 이상을 거쳐 신과 가까워 졌을 때, 환희를 맞보게 되며 불꽃같은 커다란 힘으로 새로 태어나게 됨을 강조한 것이다. 이리하여 신의 속성에 따른 ‘따스한 가슴과 때 묻지 않는 마음으로 조율된 사랑의 울림’으로 귀결되는데, 이와 함께 타고르는 좀 더 직설적으로 신에게 고백한다. 타고르의 신앙 시와 박송죽의 형이상학적인 생명에 대한 공통점이 서로 통한다는 것에서 독자는 매우 중요한 심리를 체험하게 된다.

         생명의 본질적인 인간 존재의
        가장 고귀한 삶을 고통으로 지불하는 사람들
        (…)
         십자가 때문에 살아야 하고
        십자가 때문에 죽어야 하는 수도자의 길,
         죽어야 다시 살아나는

                                박송죽, 「모든 것 버리고 공空이 된 수도자들」 중에서

   나의 생명이시여, 나는 항상 이 몸을 깨끗이 지키도록 애써야겠습니다. 님의 산 촉수가    나의 온 사지에 미치어 있음을 아니까요.
   나는 항상 나의 생각에서 온갖 거짓을 물리치도록 애쓰겠습니다. 남이야말로 나의 마음속    에 이상의 불을 켜신 진리임을 아니까요. (…)

                         R. 타고르, 「나의 생명의 생명이시여」, 󰡔기탄잘리󰡕 중에서

   인간의 삶은 단 한번만 주어진 원 게임이다. 되풀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의 미래를 짐작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 따라 방향이 설정되는 것을 허용할 뿐이다. ‘생명의 본질적인 인간 존재’는 인간에게 존재한 생명은 본질적으로 십자가의 희생, 즉 예수의 희생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고 천명한다. 그리고 십자가 때문에 죽어야 하는 수도자의 길은 진정한 생명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죽어야 다시 사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제목부터 「나의 생명의 생명이시여」라는 영탄조로 시작하는 타고르의 작품은 신이 곧 생명이며 내 생명은 신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몸을 청결히 하기로, 거짓을 물리치기로 다짐한다. 신의 촉수가 나의 온 몸에 미처 있는 탓이다. 신이야말로 나의 영혼에 이상의 불을 켜주시는 진리임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박송죽 시인의 신앙 시나 타고르의 󰡔기탄잘리󰡕 즉 ‘신에게 바치는 노래’는 모두 신을 향한 노래이므로 영탄조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시문학에서 영탄조는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는 가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약 사물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우리는 단번에 문학적 성취도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신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인간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찬송가 가사에서 영탄조가 많이 발견되는 것도 이런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신앙 시는 많은 작품이 작곡되어 노래로 불리고 있다. 박송죽은 30여 편에 음악 전문가들이 곡을 붙였고(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두문 일), 타고르는 2천 작품 이상의 자작시에 스스로 곡을 붙였다.  
    박송죽 시인의 작품에 처음 곡을 붙인 작품은 「여울」이다. 사춘기 시절 그는 어느 날 버스에서 한 남자의 우수에 젖은 눈빛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달밤에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문득 버스에서 봤던 그 눈빛이 떠올라 시를 썼으며 《민주신문》에 발표되자 작곡되어 시민회관에서 작곡 발표를 했다고 한다. 두 번째 곡을 붙인 것은 「임종의 일기」라는 연작시다. 죽음에 다다를 정도의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 비몽사몽간에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에 차오르는 불길 같은 뜨거움이 치솟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에 못 이겨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이것을 유고집이 될 뻔한 시집 󰡔저 어둠이 내게 와서󰡕에 수록했고, 음악가 하오주 교수가 곡을 붙였다. 다음은 󰡔열쇠를 찾습니다󰡕라는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무려 23편을 이종록 교수가 작곡하여 한 권의 문집처럼 우편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부산대학교 박미헤 교수, 한국예술 시곡 연구회 감독 권오철 등 그의 시를 작곡한 음악가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박송죽 시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역시 「생명의 노래」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박송죽 시인은 10대 청소년시절에 문학을 시작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1936년 그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유복자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갓 마흔 살에 운명을 달리했다. 그래서 한 번도 면대한 적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쓰게 되었고, 공모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던 것이다.

   내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큰오빠의 결단으로/임진강을     건너 남하던 날/ 허리 잘린 철교 아래는 죽은 시체들이 발목을 잡던/ 그 무섭고 무서웠던    공포 속에 몸서리 쳐지는 한 어린 역사 속에/ 아버지 북에 묻고 어머니 남에 묻고 살 추    린 바람 속에 바람으로 / 천추의 한에 저린 이 비극인 남북통일은 언제 오려는가?(…)

                                 「임진강을 건너 두고 온 산하󰡕 중에서  

   그는 가족들을 따라 남한으로 피난을 와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고 부산 내성초등학교와 남성여중·남성여고를 거쳐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도청 군사 원호청에 근무했다. 중학교 시절 백일장마다 장원 또는 입선을 차지했다. 「오직 부르고 싶은 이름이여」가 장원에 뽑혔을 때, 학교에서 1958년 󰡔보랏빛 의상󰡕이라는 시집을 발간해주었는데 이 작품은 “어릴 때 내 또래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간혹 혼자 이불을 덮어 쓰고 수없이 아버지를 불러봤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으로 미루어 봐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김 민부(일출봉에 해 뜨거든 작사) 시인과 박태문 시인, 장 승재(당시 포항 문화방송 편성부장) 시인, 강 상구 시인 등과 함께 동인활동을 하던 중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할 때 유치환 시인이 “박 군아, 참 아깝구나 ”라고 안타까워했다는 말은 젊은 시인 한 사람이 결혼이라는 제도적인 관습 속으로 묻혀버릴 것 같은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사회적 지위는 물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못 된 탓이었다. 다행히 박송죽은 결혼 이후 1978년 󰡔현대시학󰡕(발행인 전봉건)에 김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아 천료 되었다. 그러나 유치환 시인의 염려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 언니와 형부가 타계하면서 남게 된 다섯 조카를 시집 식구들 몰래 건사해야 했다. 그런 저런 어려움이 쌓여 그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영도다리에 두 아들을 업고 걸리며 갔다가 “둘째가 너무 울어” 자살마저 실패했다. 하지만 그 힘겹던 시절은 그에게 시(詩)를 돌려주었다. 큰아들은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너무 울던”둘째는 수도사제가 됐다.(…)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 2015. 08-07

    어린아이들 손목을 잡고 죽음을 생각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삶에 대한 고통의 농도를 짐작할 만하다. 그는 5형제 중 막내로 태어 어머니와 형제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나 결혼하고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한 가정의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또 졸지에 고아가 된 조카들을 돌보는 일이며 인내에 한계가 올 정도로 힘든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중년을 맞았을 때 이번에는 공직에 있던 남편이 과로로 쓰러져 뇌경색 진단을 받고 8년 동안 자리에 눕고 말았다. 언어장애와 신체장애가 겹쳤다. 한 숟갈 두 숟갈 밥을 떠먹여주어야 했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고 뉘이면서 살다가 하늘나라로 남편이 떠나고 말았다.
   시인이기 전에 여성,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라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그는 그런 와중에도 시가 정신적 동반자로 우뚝 서 있었다는 것을 그의 업적이 말해주고 있다. 대표시집 󰡔눈뜨는 영혼의 새벽󰡕을 비롯하여 현재(2018)까지 21번째 시집을 발표했고, 그 외에 수필집과 공동으로 펴낸 저서들이 다수가 있다. 여러 시집의 제호만 보더라도 그는 명상적이고 묵상적인 사유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시들로 시세계를 이룬다. 사유이미지 가운데서도 특히 생명과 영혼을 노래하는 시가 중심을 이룬다. 󰡔눈뜨는 영혼의 새벽󰡕, 󰡔내 영혼의 외로운 돌섬 하나󰡕, 󰡔들        불로 타는 영혼의 산울림󰡕, 󰡔운명의 올을 풀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미루나무 숲 바람의 음계를 밟으며󰡕 등이 거기에 속한다.      
   따라서 그의 사유이미지는 영적인 생명을 추구한다. 생명은 모성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그는 모성성을 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사실 저의 시는 비교적 어둡고 거친 편”이라고 밝히는 그의 고백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진지함과 중후함의 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대하는 현실과 삶, 그리고 사물의 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더 신중하고 더 소중하게 다가서는 시적 태도는 곧 생명성과 생명의 근원인 모성성에 대한 사유를 천착하기 때문이다.

3. 존재와 타자성에 대한 사유이미지  

   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함과 삶에 대한 집요한 응시에서 창출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타자를 향한 연민과 포용에서 우러나는 샘물 같은 것이다. 신앙 시는 더더욱 타자에 대한 연민과 포용에 집중하는 일이다. 신앙시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관에 따라 쓰는 시일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신앙적 차원에서 절대자를 중심으로 하여 가장 낮고 겸손한 자세로 신에 대한 의지를 피력할 수도 있으며 소망을 비는 기도 형식을 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 시는 자칫 신앙 그 자체로 흘러갈 염려가 없지 않는데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신앙 시는 교리에 묶이거나 관념화된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잠겨드는 영혼의 울림 같은 것으로 신앙과 미학이 육화된”이라고 한 그의 생각은 신앙 시에 대한 확고한 정립을 보여준다.

        눈물은 사랑의 뿌리입니다
        눈물은 생명의 단비입니다
        눈물은 양심의 거울입니다
        눈물은 참회의 초대입니다.
        눈물은 눈보다 더 희고 깨끗합니다.
        눈물은 사랑보다 더 강한 생명입니다.
        눈물은 영혼보다 더 맑고 영롱한 빛입니다.
        눈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기쁨입니다.

                                                 「눈물의 의미」 전문
        
   「눈물의 의미」 는 열거법과 점층법을 사용하여 눈물이 창출하는 그 끝에 닿고 있다. 첫 행부터 5행까지는 종지부를 생략하여 의미를 연장시킨다. 그리고 6행부터 종지부를 찍어 눈물에 대한 의미를 결론 내린다. 시인의 진술대로 눈물은 사랑의 근원을 이루며 생명의 단비며, 양심의 거울이며 참회의 길이다. 그래서 눈물은 눈雪보다 더 희고 깨끗하다. 사랑보다 더 강한 생명 성을 지닌다. 그리고 영혼보다 더 맑아 영롱한 빛깔을 띠는 눈물은 결국 둘이 하나가 되는 기적을 이루어 내게 마련이다. 그것은 곧 기쁨으로 승화된다. 이것이 바로 시이며 시의 역할이다. 모두에서 말한 대로 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을 넘어 표현론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다시 효용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표현론은 작자를 위해, 효용론은 독자를 위한 학설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승학산을 바라보면 수많은 나무들이 뿌리는 내리고 서있는 푸른 모습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무라는 사물에 대하여 무한한 경외심을 가진다.”는 고백대로 그는 신이 내린 생명으로부터 신앙이 준 영감을 자신을 위해 또는 독자를 위해 창출해 낸다.  

        꽁꽁 얼어붙은 내 마음의 밭에
        새 봄의 새 생명으로 영혼이 춤추며
        세상에 단맛 내는 첫 사랑의 순종으로
        활짝 핀 사랑의 노래로
        당신께 봉헌되는 나날이게 하소서

                                                「사랑이신 당신 안에서」 중에서

  진실로 내가 나답게 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출발이자 하느님의 본질에 완전히 흡수되는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식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순수 그대로 영혼의 선결작업을 할 수 있는 신앙 시는 마치 고백소에서 고해하는 것과 같이 나를 비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솔직히 저는 요즘 나이를 먹은 탓인지 신앙 시를 더 많이 쓰는 편입니다. 순결한 내가 뒤기 위한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문예시대󰡕 작가 탐방 중에서)

   공감은 인격이 부여된 상상적인 행위자들이 서로 동류의식을 갖고 사상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감정이입에 역점을 두는 시인은 암시성이 강한 말을 골라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에 치중하게 되는가 하면, 공감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성향을 보인다. 시인끼리도 이 점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함께 통유하게 된다. 존재와 타 자성, 그리고 꽃의 은유와 생명의 본질이라면 꽃의 시인 김춘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박 송죽 시인은 김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은 바, 그와의 공감적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름을 불러주기가 핵심으로 떠오른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타자성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꽃이 되어(존재성 획득) 내게로 왔다’는 고백은 발견을 의미하며 존재에 대한 회득을 함의한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시인이 하나의 작품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삼각형의 트라이앵글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삼각형의 세 개 변은 각각, 발견, 묘사, 진술로 치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발견을 하게 되고 그것을 묘사라는 수단을 통해, 시적 진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휠록이 ‘참 된 시는 깨달음의 수단’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발견을 중시하라는 당부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능력은 발견이며 김춘수 시인이 꽃을 발견한 것은 곧 생명에 대한 발견이다. 그리고 박송죽 시인이 발견한 생명적 존재와 궤를 같이한다할 것이다.
        
아직도 어리게만 느껴졌던 내가
험준한 산줄기 타고 참삶의 길을 찾아
혈육 정, 세상 정 다 씻어 잊어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되살아 보겠다고
25년의 꽃다운 나이 꼭꼭 접어
사제가 되기 위하여 훌훌이  집을 떠나던 날
너는 저만치 복사꽃으로 피어나는 축복으로 서 있고
나는 칼바람에 가슴을 찢는 할 말 잃은 장승으로 서 있다.

마디마디 아픈 정  혈육의 정이 무엇인지
신열처럼 앓고 앓으며 부대끼는 목숨
핏줄로 고이는 아픔, 너는 떠나고 나 예 있어
파랗게 묻어나는 너의 그림자에 부대끼는 목숨
핏줄로 고이는 이 아픔, 너는 떠나고 나 예 있어
파랗게 묻어나는 너의 그림자에 갇혀
어디에선가 어머니~하고 부르는 착각 속에
모성으로 옳아맨 통곡이 된다.

그러나 장한 내 아들아!
아픈 살점 떼어내는 고통일지라도
세상 맑은 창 닦아 여는 속 깊은 생명의 빛무리에
봄으로 차오르는 생명이 되기 위하여
함 목숨 한 생애 송두리째 다 바쳐
태양처럼 떠오르는 사랑의 빛이 되어라,
새 날 새 땅에
빛을 위한 너의 출발이 되어

                                                 「목마른 자의 물이 되고자」 전문

  
         흠도 티도 /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 값진 것으로 /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에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의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는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김현승, 「눈물」 전문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대표적인 신앙시를 쓴 시인을 꼽는다면 절대고독의 시인 김현승이 그 첫머리에 놓인다. 스스로 절대 고독을 끌어안고 시를 썼던 김현승의 「눈물」은 어린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고 쓴 시다. 기독교 세계관으로는 주신 자도 신이시며 거두는 자는 신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원망할 수가 없다. 김현승은 마치 구약시대의 아브라함이 신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어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고 했던 것처럼, 어린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후 순종하는 심정을 보인 것이다. 따라서 평자들은 대부분 신앙과 고독을 대립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양립으로 보기도 했는데 대립으로 보는 시각은 신앙인이기 때문에 고독한 것으로, 고독하기 때문에 신앙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았다. 대립의 시각을 분석해 보면 고독과 신앙이 각각 따로따로 시인을 만난다. 그러나 양립은 함께 시인과 공존하면서 시를 만들고 신을 신앙하게 된다. 고독함으로써 신과 가까워질 수 있고 신과 가까워짐으로서 고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이 어느 날 사제가 되겠다고 나설 경우 어머니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까? 인류의 뭇 영혼들을 위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는 것은 일반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적인 삶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몸과 영혼을 모조리 신에게 바치는 서약아래 일평생 신의 명령을 따르는 길이다. 거기에는 세상의 명예와 물질과 안락이 따르지 못한다. 거기에는 ‘나’ 즉 내가 없으며 타자만 있다. 청춘의 꿈을 타자를 위하여 바쳐야 한다.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육신의 고된 연단을 마치 대장간의 불꽃 속에서 쇠를 단련하듯 수행해야만 한다.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신 앞에 순종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을 단 한 순간도 일 점 일획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고난의 길을 어떤 어머니가 쾌히 찬성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는 어머니의 고뇌를 드러낸다. 그는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기까지 혼자 싸워야 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혼자 밀고 당기기,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기 등등, 혼자서 싸움을 벌이는 변증의 시간, 즉 테제와 안티테제를 수없이 거쳐 스스로 합의를 보게 되는 진테제에 이르렀을 것이다.
   「목마른 자의 물이 되고저」는 아들이 세상의 ‘목마른 자들의 물이 되고자’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길을 나섰을 때 멀리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멀리서 수도사제가 되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 25세 청춘은 마치 복사꽃으로 피어나는 축복 속에 서 있는 듯하지만, 어머니는 가슴이 찢긴 채 할 말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둘째 아들 그는 대학 재학 중 여름방학 때 수사들과 함께 나환자촌 봉사를 했다. 장작도 패고, 닭장, 돼지우리를 치웠다. 그 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제의 길을 가기로 작정했고 지금은 십자가 아래 서 있으며, 어머니는 신문고 방송 등 매스컴을 통해서나 아들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이다.


너는 나무십자가 아래 서 있다.
빈자리 하나 없이 온천지를 불 지르기 위하여
빨간 사르비아  꽃
타는 사랑의 불타는 가슴으로 서 있다,


하늘 한 자락 외로운 수단자락 깔고
병들고 추위타는 상한 영혼들을 위하여
너는 살고 나는 죽어도 좋으리라
한 목숨 한 생애 불꽃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께서 부르시면
“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려 여기 왔나이다.“ 하고
소망 속에 동트는 게세마니 동산에서
통절한 아픔으로 부활을 여는
피 묻은 나무 십자가 아래 서 있다.

한 목숨 한 생애 촛불처럼 사르며
예수 성심의 카이노스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십자가 때문에 살아야 하고
십자가 때문에 죽어야 하는....,

        
                                        「나무 십자가 아래」 중에서
    
   지금 아오스팅(둘째 아들) 신부가 하는 사목은 주로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회복사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평화방송 TV에 ‘영성의 향기’ 출연은 물론 미국 남가주 카이노스 성장 세미나 찬미와 말씀을 통한 치유에 성령송가를 직접 작사하여 음악피정, 청주 교구 새 영을 받아라, 자비와 회복 세미나 등 󰡔사도의 모후󰡕, 󰡔회복여정󰡕 등 책 출간과 피정을 다니면서 하고 있는데, 이런 소식도 인터넷을 통해서 알거나 포스터나 사진이 나오면 휴대폰으로 찍어 두는 것이 유일한 만남이고 위안과 기쁨입니다.
                                                         (부산가톨릭문학 제27, 여름호)
          

4. 신에게 가까워지는 기쁨
  
   그는 신 앞에 아들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사제가 된 아들을 닮아간다. 즉 “들꽃 향기 가득, 세상 뜰에 다소곳이 피었다 져가는(…) 키 작은 노래에 노래로 봉헌되는 내 삶의 모두가 예술”(「삶이란 내가 가꾸는 예술이다」)이라고 고백한 대로 그의 삶은 고독에서 기쁨으로 승화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나는 노예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길 원합니다.’(「노예가 되길 원합니다」) ‘목숨의 불꽃/ 사랑으로 하나이어라/ 주님과 나 우리 모두 하나이어라’(「하나이어라」)고 노래할 수 있는 성숙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내가 침묵할 때 나는 나를 본다.
         내가 나를 보았을 때
        내 안에 살아계시는 당신을 본다.
         (… )
         맥박 치는 심장에 고동으로 울려 퍼지는
        생명의 태반이여
        머물러 피어오는 청아한 빛,
         빛으로 다스리는 목숨의 꽃 심지에
        진하고 아픈 삶의 무게를 달게 하라
        (…)
                                         「침묵할 때」 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다.
         태어나는 것은 변화되는 삶의 모습이다.
         언제나 끊임없는 부활의 아침 같은 기쁨.
         (…)
         넝쿨진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밝은 웃음 띤 행복을 건네주는
        뜨거운 가슴, 삭혀진 향기
        물씬 베어 내어주는
        세상 아름다움에 생명의 텃밭 일구는 일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중에서
  

         길 밖에 길이 열려있네
        그러나 그 길은 보이지 않네
        가끔씩 발동하듯
        앞을 가로막는 팽만한 어리석은 욕망,
         미로의 방황에서 비명을 지르며
        길은 있어도 길을 찾지 못하게 하네,

         길밖에 길이 있네.
         살아 있어야 볼 수 있는
        영혼의 떡갈나무 숲
        온통 눈부시게 빛나던
        잎 새마다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되어
        파도처럼 출렁이던
        (…)                                「길」 중에서
        
    인용한 작품 「침묵할 때」, 「살아간다는 것은」, 「길」 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고독과 기쁨이 넘쳐나는 노래다. 침묵할 때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은 곧 ‘내 안에 살아계시는 당신(신)을 보는’것이다. 또한 생명의 태반에서 발견되는 청아한 빛과 빛으로 생성되는 목숨 같은 꽃 심지에 아픈 삶의 무게를 달고 싶다는 진술은 삶, 즉 신에게 가는 방법은 쉽게 꽃피울 수 없다는 은유이다. 따라서 신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연단과 같은 고해를 통해서인데 작품 「살아간다는 것은」 중에서,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며 태어나는 것은 변화되는 모습이라고 진술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생명의 텃밭을 일구’는 일로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활의 아침 같은 기쁨으로 화자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사실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길은 「길」에서 고백한대로 길은 있어도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무수한 영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무수한 영혼들을 위해 손에서 묵주를 놓지 못한 것이며 신앙시를 써가는 것이다.
   신부로서 엄격한 규율 안에서 오로지 영성의 길을 가는 것은 순교에 다름 아니다. 그 길을 가자면 기도가 일용할 양식이기에, 또 어머니로서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는 탓에 잠결에서도 손에 든 묵주가 떨어지면 천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고 한다.
  
5. 맺는 말

   雲涯 박송죽 시인이 부산시단에 나왔을 때 여성 시인은 박송죽과 황양미 시인 두 사람뿐일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 시단의 원로 중 원로이다. 그러나 원로는 나이로 계산되는 문제가 아니다. 마치 한 땀 한 땀 빠짐없이 바느질을 하듯이 문인으로서 충실하게 작품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문단 후배들을 이끌어오는 사표가 될 때 비로소 원로라는 존칭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선 松竹이라는 이름부터 시인의 천명을 타고 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에게는 소나무 솔잎 같은 고요한 향기와 대나무와 같은 올곧고 단단한 정의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일상적인 세계를 낯선 세계로 바꾸는 작업인 바, 그는 일상적인 신앙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바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등단 초기에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시를  썼던 그가 신앙 시를 쓰게 된 것은 죽음에 이를 정도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부터이다. 시는 곧 비유에서 출발한다. 예수는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태초 세상을 창조한 창세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들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마태, 13-43)이라고 성서는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서에서 비유를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자연과학은 물론 모든 사회과학을 포함하여 모든 진리가 창조의 원리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깨닫게 한다는 것은 직설적인 말보다는 비유적인 말이 필요한 탓이다. 물론 예수의 비유는 신과 인간의 연결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모든 게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삶을 바꾸겠다는 목적에서이다. 즉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속성대로 만들어졌으므로 예수는 인간의 본성을 곧 신의 속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신의 속성이 변질되거나 파괴되어버린 것이며 그것을 복원하는 것이 예수의 사명이며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세상을 관조하는 태도가 다르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따라야 하고 그것이 무거울수록 미래지향적이다. 미래는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이며 시인은 미래를 예시하는 예언적 성격을 띠는 것도 그래서이다. 따라서 그는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될 때가 많고, 심지어 때로는 이대로 흘러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위기의식마저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는데 그의 염려는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성을 띤다. 쉽게 말해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 곧 정신이다. 정신은 다시 인문학적인 문제와 맞닥뜨린다.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한 예수의 부탁에 더하여 시인(모든 시인)은 어쩌면 세상의 소금과 빛을 뛰어 넘어 카나리아인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탄광 광부들이 갱내로 진입할 때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갔다고 한다. 갱내에 축적되어 있는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를 사람보다 먼저 느끼게 되고 그 고통으로 하여 죽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상은 사실 갱 속이다. 그리고 카나리아가 죽어가는 서글픈 눈물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시가 남아 인간을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낮춰준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모진 세상을 위하여 살아가는 또 살아야 하는 카나리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천착해간 노 시인 박송죽은 카나리아가 되기 위해 평생 몸부림쳤다는 것을 자타가 믿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에게는 잘 자라준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다. 장남은 하버드대 교수로 자연과학 연구자이다. 노화로 죽어가는 세포를 재생시키는 것과 치매를 예방하는 연구논문이 발표되어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탔다. 어머니가 죽음을 향해 영도다리를 찾아갔을 때 울어대던 둘째 아들은 수도사제의 길을 가는 신부가 되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마지막 셋째인 딸은 수학교사로 교육자의 삶을 살고 있다. 결혼 할 때 “박 군, 아깝다”라고 했던 유치환 시인의 안타까움은 괜한 걱정이었다. 유치환 시인이 안타까워했던 박군(박송죽)은 시인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서도 대성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천수를 누려 영혼이 아름다운 시인은 장수한다는 인식을 만들어주길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요한 말을 빼놓을 수가 없다. 1912년 9월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에 후기를 붙인 W. B. 예이츠는 ‘이 시집이 길이길이 영원한 노래로 남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예이츠의 예언대로 타고르의 신에게 바치는 노래는 세계인에게 영원히 바쳐졌다. 박송죽 시인의 신앙 시 역시 한국의 ‘기탄달리’로서 영원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박송죽 시인이 한국의 타고르로 인식될 것으로 믿는다. 왜?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신을 신앙할 것이며 신은 영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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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죽
  201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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