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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세상 아름다움을 위한 영혼의 노래가 되기 위하여

      세상 아름다움을 위한 영혼의 노래가 되기 위하여  
          
시는 영혼의 울림이다. 따라서 기도는 절대자인 하느님께 인간이 살아가면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바쳐지는 경건한 서사시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를 두고 생각한다면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성실과 인내로 진솔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건져 올린 순수한 맑고 투명한 영혼의 노래가 되기 위하여서는 아무리 세상이 혼돈과 무질서의 어둠으로 짓누를지라도 그 어둠을 가시게 하는 거름과 같은 빛이 되기 위하여 보다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문학의 중심 테마에 초점을 맞춘 아름다움을 위하여 부단히 하느님을 닮아 가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고통과 좌절과 시련의 매질로 담금질 되어가는 삶의 여정에서  어쩌면 문학은 나를 다스리는 양심 성찰의 도구이며 희망의 닻줄이다. 그리고 그 문학 속에서 내가 되기 위하여 무척 나와의 싸움을 하지만 번번이 늘 패잔병의 쓴잔을 마신다. 이런 나에게 있어 문학이란 나를 나답게 만들어 가기 위한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배려이며 따라서 인간구원을 부각시켜주는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 언어의 연금술과 만나 마치 천지를 창조 하시고 "보시니 좋았다!“는 감탄사로 거듭나는 투명한 영혼의 노래인 시로써 아름다운 세상을 창출하는 한 부분을 미력하나마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60여년 넘는 문단생활을 회고하면서 시를 쓰는 나의 변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 자신의 확인이며 내게 있어 신앙처럼 소중하다. 그런 의미를 두고 생각한다면 사람마다 각자 저마다의 삶 안에서 자기만이 추구하는 생의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자기만이 성취해야하는 목표가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을 유지하고 형성하는 나의 시의 핏줄과 넋이 이질적으로 잘 타협되지 않고 적응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중병을 앓으면서도 또한 나를 형성하며 지탱케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한 줄의 시에 한 밤을 목마른 갈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내게 있어 시는 결박이 되고 구속이 되지만 어쩌다 이메지 화 된 시 한 줄이 마음에 들면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날개를 달게 할 때도 있다. 이렇듯 산고의 아픔을 겪으며 피 말리는 작업을 수십 년을 되풀이하여 길들어온 나의 문학관은 삶과 문학을 따로 구분할 수 없는 나의 삶의 전부인 그 자체이다.
나는 그 동안 8년이란 긴 세월을 공직에 있던 남편이 과로로 쓸어져 뇌경색으로 사지가 마비되고 말문까지 닫은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을 때 부산일보에서 < 박송죽의 문학세계>란 난을 만들어 서울에 김정란시인과  강은교 시인 다음 3번째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되는 자기 시론 과 세상 속에 시의 역할에 대하여 글을 써 달라고 청탁해 왔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 귀한 지면이지만 연재할 자신이 없었다. 여러 차례 거절 하였지만 꼭 써달라는 청에 의하여 결국 응답하고 낮에는 병원에서 그이의 수발을 들다가 밤에는 간병인에게 부탁하고 집에 와서 피로한 몸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그 속에서 원고지 12이매 내외의 분량을 써야 하는데 왜 그렇게 힘들고 일주일이 빨리 왔던지 ?
지금와서생각하면 1958년에 고 김춘수 선생님께 추천 받아 문단 생활 한지도 60년이 넘게 긴 세월을 전전긍긍하며 파지(破紙)도 많이 버렸지만  원고지 앞에서 그렇게 막막한 어둠으로 내가 왜 이렇게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후해를 거듭 했다.
  그러나 문학은 삶의 근원적인 신앙처럼 나를 다스리고 있는  삶의 현주소이며 양심성찰의 거울이다.  이 거울은 결점뿐인 나 자신의 과오를 투시하게 하고 또 나답게 되기 위한 노력과 거짓 없는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어 모름지기 내 살아온 삶의 여정에 있어 가난 속에서 참된 행복을 배웠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인내와 신념을 배웠고, 또한  양심이 상표가 되어야 한다는 정직한 눈물 속에서 시를 쓰려 애써 왔다.
그리고 소중한 독자와의 만남에서 그냥 읽혀지는 시가 아니라 가슴에서 용해되고 분해되어 새살로 차오르는 생명이 되어 서로의 아픈 마음 싸 메어 주고, 추운 마음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손끝으로 쓰는 시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쓰는 시가 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내 삶이 여물지 못하였듯이 문학도 인생도 신앙도 내 세울 것 없이 부족함으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오늘까지 채찍이 되고 격려가 되는 이 시 작업은 무거운 나이를 이고 사는 나에게 앞으로 얼마나 삶의 여정이 허락될지 몰라도 허락하는 날까지 숙명처럼 함께 동반되기를 바란다.
솔체니친은 “ 문학은 가장 진실한 삶의 추구이요, 실천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스승이며 문단 등단과 오늘까지 시의 길을 갈 수 있게 출가 시켜주신 고 김춘수 선생님께서 “왜 나는 시인인가”라는 주제에서 “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하셨다“
그렇다.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더더구나 경제적으로는 늘 허기를 면치 못하게 하는 가난 속에서 삶을 길 드려야 하는 구차한 문학의 길인데도 왜 절필하지 못하고 숙명처럼 끈질기게 고통을 지불하며 산고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버리지 못할까.
시는 “모든 예술의 꽃”이라고 하고  또 “모국어”라고 까지 지칭되고 표현된다. 이런 시는 영혼의 아름다운 표현이며 인간의 내면적인 진실성을 바탕 둔 새로운 세계의 아름다움으로 눈뜨게 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그러기 때문에 시인은 언제나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를 갈구하며 어둠으로 탄식하며 절규하는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뜨거운 가슴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 영혼의 노래는 자연과 사물과 인간에 대한 애정의 출발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투영한 정신적인 자유의 날개를 달게 하는 감동과 삶에 리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원초적인 자유와 성스러운 환희의 기쁨으로 다가오는 감동은 어떤 뚜렷한 물질적인 생산력은 없지만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인 활력으로 인간성이 말살되고 양심이 실종되는 어두운 시대일수록 시의 저변확대가 요구되는 원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세상적인 아픔에 고열을 앓으며 진실이 결의되지 않는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건져 올린 생명의 노래로 살아서 깨어나는 정신으로 독자를 찾아 가야 한다.
마치 심장에서 피를 걸러 온 몸에 피 돌림으로 생성하는 새로운 맑은 피로 목숨이 존재하게 하듯이 시인은 어두운 시대일수록 그 시대의 심장부에 펨프의 역할로 새로운 피를 수혈시켜야할 의무와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음도 불사한 십자가의 그 사랑처럼...
그런 의미를 두고 내 시는 아픈 고통으로 시금술 되어져야 하는 세상 아름다운 빛이고 싶다.  들꽃향기 가득하게 얼비치는 세상 아름다움 안에 맑고 밝음으로 채워질 수 있는 참된 삶의 진리 안에 접목될 수 있는 생명의 한그루 나무. 삭풍이 몰아치는 눈 덮인 청솔가지에 잎 잎마다 푸르름으로 돋아나는 신비한 생명 안에서 더 많이 아파하며 더 많이 절망하면서 쓰지 않고는 못 베길 역마살이 들린 이 고질병과도 같은 내 시는 혈류를 타고 돌고 돌아 삶의 심장부에서 맥박 치며  죽음 같은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강한 의지와 인내로 담금질되어지는 새 생명의 잉태이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적인 창작은 생명의 신비이며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원형적인 숭고한 아름다움 안에 바탕 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두고 나의 시력은  세상의 밝은 곳 보다 어두운 곳에 초점을 맞추며 생명의 빛을 발휘 할 수 있는  시인의 사명을 다 하며 자생력을 잃지 않고 싶다. 마치 살아가는 삶 지체가 종합예술이 듯이 원고지 앞에서는 언제나 떨리는 순수한 신인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눈꽃처럼 희디 흰 화선지에 난을 치듯 시를 쓴다.
  
    사랑으로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유치환, 김춘수, 이영도 선생님-

고통과 그리움으로 출발한 나의 문학의 길을 인도하신 분은 김춘수선생님과 유치환 선생님과 이영도 선생님이시다.
때로는 절망하고 회의를 느끼며  절필하고 싶을 때마다 큰 버팀이 되어 채찍과 격려가 되어 오늘까지 문학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숙명처럼 60여년 넘게 절필하지 않고 문학의 길을 가고 있다.
  사실 나는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측의 권유로 <백일장>에 나가 <오직 부르고 싶은 이름이기에>란 시로서 장원을 하고 그 이후에 백일장마다 여러 상을 타면서 <일출봉에 해 뜨거던 가곡 작사> 했던 김민부와 박태문, 장승재. 강상구,..등<蘭>이란 동인으로 활동할 때 김춘수 선생님께서 마산 중학교에서 재직하고 계시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부산까지 오시여 문학 지도를 해 주셨다.
<일출봉에 해 뜨거던>  이란 가곡 작사로 널리 알려진 천재시인 고 김민부 시인이 <항아리 시집> 을 출간 하였을 때  모교에서 <보라 빛 의상>이란 내 처녀시집을 출간하여 준 것이 화제가 되어 민주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신문사에서 화제꺼리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 당시엔 추천제로 문단에 데뷔하기도 하였지만  처녀시집 출간한 것으로도 문인으로 인정되던 시절 이였기 때문에< 유치환, 홍두표, 조향. 김일구. 김태홍. 손동인 조유로...,시인>등  아무튼 지금은 다 기억 할 수는 없지만 선배 문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문단의 말석 자리에서 활동했다.
지금 조선호텔 맞은 편 <백산 문학관> 그 위치에 폐간 된 민주신문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민주신문 문화면에 내 시를 자주 게재하여 준 시중에 <여울>이란 시가 작곡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고 진병덕 화백과 함께 <사제시화전>을 지금 용두산 공원에 올라가는 그 당시에 유일한 문화 공간 이였던 <칸타비례>에서 전시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전교생들이 줄을 서서 관람하게 하기도 하였다.
시화전을 마치던 날 여러 문인과 선생님을 모신 자리에서 김춘수 선생님께서<박송죽의 문학세계>에 대하여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고 그 이후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하여 다시 데뷔 하였다  
김춘수 선생님은 너무 엄격하시여 선생님이 문단에 추천한 사람은 단 세 사람밖에 없을 만큼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도 조심스러웠던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오히려 유치환 선생님을 허물없이 대할 수 있어 좋았고 그 당시에 경남여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 <울산 지부와 라이온즈, 노타리 클럽>  초청으로  진병덕 화백님의 그림으로 시화전을 열게 되었다. 그 때< 초청장의 발문>을 유치환 선생님이 써 주셨고 <푸른 생명의 깃발로 흔들리는>이란  추모시를 선생님의 일주기에(통영시청강당)에서 낭송하였으며 고동주시장님께서 낭송했던 시를 문학관에 두겠다고 달라하여 드렸으나 소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도 선생님은 금정산 <애일당>에 계시다 장전동으로 아담한 집을 사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자주 방문하여 때로는 자고 오기도 하고 시조)로 장르를 바꾸어 보라고  할 만큼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친 언니 같은 선생님이셨다. 이 처럼 세분 선생님은 문학의 길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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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죽
  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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