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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아픈 역사의 언저리에서 문신(文身)을 새기며

아픈 역사의 언저리에서 문신(文身)을 새기며  

        

시간은 잔 주름지는 세월 속에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미레의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걸까? 나이 탓일까? 휘발성이 강한 일상의 대부분은 기억의 뒤안길에서 안개속 안개꽃으로 사라지는데 아직도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창고 속에서 슬픈 성에처럼 피어나는 <4/19>부정선거와 <5/18> 민중항쟁 사건들을 겪으면서 분노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당시에 공직에 있으면서도 정의감에 불타 <한일교류 연구소장  이 종석 회장님 과 여러 문단 선배님들과 함께 > 데모 대열에 섰다가 유치장 신세를 같이 저야 하기도 했지만  출판한 < 다선 손가락의 삶의 지문>에 <오! 그대 자유여! >란 시가 검열에 걸려 보안사에서 하루 밤 독방 신세를 지고 나왔다
그 때 그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반공경보 싸이렌이 울리면 동회에서 주는 검은 자루 같은 것으로 빛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등위에 씌웠던 것이다.  
하바드대학교수인 큰 아들과 수도사제인 둘째 아들과 교직 생활을 하는 막내 딸 들이  그 당시에 모두 어린 초등학생으로 신기했던지 이불을 둘러쓰고 깔깔거리는 것을 보면서 아픈 마음으로 언제 이 땅에 참 자유가 올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시였는데  <오 그대 자유여!> 란  시구(詩句)만 보고 그렇게 한 것 같다.
하루 밤 지나고 나온 이틀 이후에 부산시청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죄도 없는 사람을 왜 또 오라고 합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반문하니까  <주 영복 국방부장과 최종호시장과 여러 기관장님들과 함께 >대청동 <서라벌 호텔>에서 조찬회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요청 이였다.
아니, 나 같은 사람을 기관장들의  조찬 희에 왜 참석하라 하는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필경 무슨 죄명을 씌워 구속하려고 그런 것 이라고 생각을 하니 발걸음도 무거웠다.
그도 그런 것이 그 당시엔 죄가 없어도 죄명을 만들어 씌우면 곧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한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국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우고 마구 채루 탄과 총으로 쏘아 죽일 때였다.
  그런 와 중에  마산 앞바다에서 채루 탄이 눈에 박힌 채 물위로 등등 떠올랐던 <김주열>학생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성난 국민들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노도와 같은 분노의 불길이 전 국민 모두에게 들불처럼 타올랐기 때문에 계엄령 까지 내려 군인들이 마구 민간인들을 적으로 생각하고 총과 채류 탄을 쏘았기 때문에 많은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죽어 갔다.
그리고 또 그 당시에 안기부 대공 분실에서 물고문 당하여 죽어간 <박종철 대학생>이며  전국 대학생들의 데모 대열에서 채류 탄에 맞아 주어간 고려대 <이 한열>열사 등 억울하고 암울한 시대에 개죽음 당하기에 일수였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 나는 그 분노를 참지 못하여 <열쇠를 찾습니다.>라는 연작시를 써서 < 현대시학 >에 발표했고 그 발표된 시편들을 모아<생의 한가운데로 스쳐가는 불의 바람이 되어>란 시집을 <성 바오로출판사>에서 백 기택 암브레오 신부님께서 이태리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피 묻은 예수님의 나무에 묶은 원본 사진까지 넣어  칼라 판으로 제작하여 출판하여 주셨다.
그리고 세계 시인협회에서는 해마다 년 간 앤솔로지에 <초혼제와 추억수첩>이 수록되었고 해마다 한명씩 수상자를 선정하고 상을 주는데 내가 선정 되어 <세계시인상>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이 상은 내시가 특출해서가 아니라 광주사건이 국내에서는 메스콤의 제안으로 상세히 보도 되지 않았지만 외국 기자들이 상세히 보도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외국에서는 정말 우리나라의 군부의 만행으로 국민이 탄압 받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였든지 뜻밖에 <세계시인상>을 받게 된 것 같았다.
  ”평론가이며 시인이신 황송문 교수께서는 <열쇠를 찾습니다> 해설 중에 <질식할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생(生)과 사(死)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박송죽씨의 <시의 세계>는 “혼탁하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아파하며 절규하며 차라리 죽음과 맞바꾸고 싶은 투혼으로 진정한 삶의 열쇠를 찾기 위하여 선혈이 낭자한 치열하고 농축된 언어로 핏빛 울음을 토해 내고 있다. ” 라고 했다.
뜻밖에 <세계시인상>을 받게 된 기사와 함께 <MBC TV>는 황룡산에서< KBS tv> 는 성지 곡 수원지에서 촬영하여 <부산문화가 산책>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 처럼 아픈 역사의 언저리에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꿈결과 같이 “용케도 오늘까지 살아 왔구나 ”?. 하는 생각과 함께 제발 좌파니 우파니 하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하루 빨리 통일 되어 한 마음 한뜻모아 세계애서도 으뜸가는 우애로운 통일된 대한민국이 되어 살아생전 북한인 고향 땅 한번 밟아보고 이 지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수필 부산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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