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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빈 뜰에 떨어진 씨앗 하나

빈 뜰에 떨어진 씨앗 하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기쁨에 젖는다.
뜰은 좁지만 모과 ,석류 ,배나무가 좁은 뜰을 지키며 탐스럽게 열매를 맺어준다.
분재의 아기사과와 포도, 매실은 작으나마 앙증스럽게 올망 졸망한 열매를 달고 재롱부리는 아기처럼 포근한 질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모과나무가 해 거리를 하는지 아니면 초봄의 강한 비바람에 꽃이 다 떨어져서인지 잎만 무성하다.
그런데 심지도 않은 호박 한 포기가 싹을 틔우더니 하루가 다르게 쭈욱 쭉 줄기를 뻗으며 모과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가서는 이젠 제법 올망 졸망한 호박을 달고 채 피지 못한 꽃들을 마져 피우느라 부산하다.
이에 비해 큰 덩치에 모과 몇 개만 달고 열없는 모과나무가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주는 호박을 업고 다소 체면치레가 되었다는 듯 제법 분위기를 잡고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다.
도심지에서는 호박꽃을 볼 수 없다.
좁은 뜰에 심어 보았자 토질 관계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호박꽃은 관상용의 꽃으로서는 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호박이 우리 집 뜰에 우연히 심겨져 아름다운 고향의 정취를 물씬 안게 하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볼수록 정겹고 아름답고 기이하다.
그 동안 무심하게 잊고 살아온 고향이 호박꽃 속에 빛 바래진 추억으로 둥지트는 그리움을 안고 되살아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온 누리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내 고향.
그 고향 사람들은 투박하면서도 진실하고, 진실하면서도 바보스러우리 만큼 흙의 진실을 안으로 체질화시키며 살아간다.
그들은 또 끄기 있는 성실성으로 정의 울타리를 단단히 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며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천리<天理>를 몸소 실천하며 자신들을 다스리고 살아간다.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속으로는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허약성을 안으로 꽉 채우고 어둡게 살아가는 도시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짙은 인간 향기의 단맛을 내며 살아간다.
마치 연약한 줄기의 나무나 식물이 더 큰 열매를 맺고 우리의 미각을 더 융성하게 단맛을 내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의 삶을 체질화시켜 가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의 곁을 떠나 수년을 삶의 풍랑 속에서 이리 저리 부대끼며 표류된 배처럼 살아가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하여 가고 있는 건가.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특혜의 은총으로 이 광활한 대지에 우연이면서도 우연이 아닌 인위적이면서도 인위적이 아닌 자연 법칙의 신비 속에 생명체의 인간으로 태어난 나.
얼마만큼 인간으로서 삶의 농밀한 과액을 저장하며 사회나 이웃 안에서 단맛 내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건가.
부끄럽게도 죽음의 입성을 갈아입어야 하는 이 나이에 와서 생각하여 보니 반수면적인 안일한 삶을 나태하게 영위하면서 갈피 잡을 수 없는 미로에서 방황만 하는 오류만을 범하여 살아왔다는 후회만이 뼈를 깎는 아픔을 안게 한다.
탕진하여 버린 지난 세월을 후회한다고 그 세월이 다시 올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이제라도 나를 성실한 인내와 끈기 있는 매질로 스스로 다스려 보아야겠다.
저 연약한 줄기에 무거운 열매를 달고 태풍 베라호의 강한 바람에도 앙가짐 쓰며 매달려 끈질긴 항변으로 타는 가을볕에 몸을 익히는 백과같이 아낌없이 내어주는  후회 없는 삶.
두엄처럼 썩고 썩어 거름이 되어 주는 삶을 소중한 내 가정과 사회와 이웃과의 뜨거운 만남에서 열매 맺어야 겠다.
저 빈 뜰에 떨어진 호박의 씨앗 하나가 많은 열매를 맺어 주는 천리적인 교훈을 삼아 내 삶의 실천 요강으로 얼마만큼 허락될 생일지는  몰라도 남은 여분의 생은 열매 맺어 정말 인간다운 향기로 단맛 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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