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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눈물의 꽃 詩여, 내 삶의 영토에 꽃이피게하라

눈물의 꽃 詩여, 내 삶의 영토에 꽃이피게하라

    -시를 쓰는 나의 변-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 자신의 확인이며 내게 있어 신앙처럼 소중하다.
그런 의미를 두고 생각한다면 사람마다 각자 저마다의 삶 안에서 자기만이 추구하는 생의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자기만이 성취해야하는 목표가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을 유지하고 형성하는 나의 시의 핏줄, 나의 시의 넋이 이질적으로 잘 타협되지 않고 적응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중병을 앓으면서도 또한 나를 형성하며 지탱케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한 줄의 시에 한 밤을 목마른 갈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내게 있어 시는 결박이 되고 구속이나 어쩌다 이메지 화 된 시 한 줄이 마음에 들면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날개를 달게 할 때도 있다.
이렇듯 산고의 아픔을 겪으며 피 말리는 작업을 수십 년을 되풀이하여 길들어온 나의 시, 나의 문학관은 삶과 문학을 따로 구분할 수 없는 나의 삶의 전부인 그 자체이다.
나는 그 동안 8년이란 긴 세월을 공직에 있던 남편이 과로로 쓸어져 뇌경색으로 사지가 마비되고 말문까지 닫은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을 때 부산일보에서 < 박송죽의 문학세계>란 난을 만들어 서울에 김정란?시인과  강은교 시인 다음 3번째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되는 자기 시론 과 세상 속에 시의 역할에 대하여 글을 써 달라고 청탁해 왔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 귀한 지면이지만 연재할 자신이 없었다. 여러 차례 거절 하였지만 꼭 써달라는 청에 의하여 결국 응답하고 낮에는 병원에서 그이의 수발을 들다가 밤에는 간병인에게 부탁하고 집에 와서 피로한 몸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그 속에서 원고지 12이매 내외의 분량을 써야 하는데 왜 그렇게 힘들고 일주일이 빨리 왔던지 ?
지금와서생각하면 1958년에 고 김춘수 선생님께 추천 받아 문단 생활 한지도 60년 가까이 긴 세월을 전전긍긍하며 파지(破紙)도 많이 버렸지만  원고지 앞에서 그렇게 막막한 어둠으로 내가 왜 이렇게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후해를 거듭 했다.
  그러나 문학은 삶의 근원적인 신앙처럼 나를 다스리고 있는  삶의 현주소이며 양심성찰의 거울이다.
이 거울은 결점뿐인 나 자신의 과오를 투시하게 하고 또 나답게 되기 위한 노력과 거짓 없는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어 모름지기 내 살아온 삶의 여정에 있어 가난 속에서 참된 행복을 배웠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인내와 신념을 배웠고, 또한  양심이 상표가 되어야 한다는 정직한 눈물 속에서 시를 쓰려 애써 왔다.
그리고 소중한 독자와의 만남에서 그냥 읽혀지는 시가 아니라 가슴에서 용해되고 분해되어 새살로 차오르는 생명이 되어 서로의 아픈 마음 싸 메어 주고, 추운 마음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손끝으로 쓰는 시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쓰는 시가 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내 삶이 여물지 못하였듯이 문학도 인생도 신앙도 내 세울 것 없이 부족함으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오늘까지 채찍이 되고 격려가 되는 이 시 작업은 무거운 나이를 이고 사는 나에게 앞으로 얼마나 삶의 여정이 허락될지 몰라도 허락하는 날까지 숙명처럼 함께 동반되기를 바란다.
솔체니친은 “ 문학은 가장 진실한 삶의 추구이요, 실천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스승이며 문단 등단과 오늘까지 시의 길을 갈 수 있게 출가 시켜주신 분이 고 김춘수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의 산문집에 “왜 나는 시인인가”라는 주제에서 “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하셨고 또 “시인이란 절대 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자유는 현실에 없다고 깨닫고 있으면서도 심리적인으로 추구 한다. 그런 상태를 깊이깊이 의식으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렇다.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더더구나 경제적으로는 늘 허기를 면치 못하게 하는 가난 속에서 삶을 길 드려야 하는 구차한 문학의 길인데도 왜 절필하지 못하고 숙명처럼 끈질기게 고통을 지불하며 산고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버리지 못할까.
문학의 모든 장르 중에서 특이나 시는 “모든 예술의 꽃”이라고 하고  또 “모국어”라고 까지 지칭되고 표현된다.
이런 시는 영혼의 아름다운 표현이며 인간의 내면적인 진실성을 바탕 둔 새로운 세계의 아름다움으로 눈뜨게 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그러기 때문에 시인은 언제나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를 갈구하며 어둠으로 탄식하며 절규하는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뜨거운 가슴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 영혼의 노래는 자연과 사물과 인간에 대한 애정의 출발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투영한 정신적인 자유의 날개를 달게 하는 감동과 삶에 리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원초적인 자유와 성스러운 환희의 기쁨으로 다가오는 감동은 어떤 뚜렷한 물질적인 생산력은 없지만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인 활력으로 인간성이 말살되고 양심이 실종되는 어두운 시대일수록 시의 저변확대가 요구되는 원인이 된다.
25시의 작가 케오르규 시인은 “ 시인은 그 시대의 산소량을 재는 측정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세상적인 아픔에 고열을 앓으며 진실이 결의되지 않는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건져 올린 생명의 노래로 살아서 깨어나는 정신으로 독자를 찾아 가야 한다.
마치 심장에서 피를 걸러 온 몸에 피 돌림으로 생성하는 새로운 맑은 피로 목숨이 존재하게 하듯이 시인은 어두운 시대일수록 그 시대의 심장부에 펨프의 역할로 새로운 피를 수혈시켜야할 의무와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사경에 빠진 자식을 위하여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어머니와 같은 희생정신으로.....,
그러나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듯이 둔재로 역부족인 나는 마음만으로 부끄러운 양심 성찰 같은 시론 아닌 내가 시에 임하고자 하는 각오와 신념이 되는 생각을 피력하여본다.
그런 의미를 두고 내 시는 아픈 고통으로 시금술 되어져야 하는 세상 아름다운 빛이고 싶다
들꽃향기 가득하게 얼비치는 세상 아름다움 안에 맑고 밝음으로 채워질 수 있는 참된 삶의 진리 안에 접목될 수 있는 생명의 한그루 나무.
삭풍이 몰아치는 눈 덮인 청솔가지에 잎 잎마다 푸르름으로 돋아나는 신비한 생명 안에서 더 많이 아파하며 더 많이 절망하면서 쓰지 않고는 못 베길 역마살이 들린 이 고질병과도 같은 내 시는 혈류를 타고 돌고 돌아 삶의 심장부에서 맥박 치며  죽음 같은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강한 의지와 인내로 담금질되어지는 새 생명의 잉태이고 싶다.
어쩌면 긴 겨울 동안 방치해둔 죽은 듯이 보이는 씨앗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영혼의 노래이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적인 창작은 생명의 신비이며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원형적인 숭고한 아름다움 안에 바탕 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두고 본다면 시인은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를 영혼의 눈으로 투시하는 시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영혼의 눈은 번뜩이는 섬광과도 같이 생명의 빛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하루하루 숨 쉬고 살아가는 삶의 모두가 자기가 가꾸는 종합예술인 숭고한 시를 형성하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원고지 앞에서는 언제나 떨리는 순수한 신인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눈꽃처럼 희디 흰 화선지에 난을 치듯 시를 쓴다.
  

                  2019=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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