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죽 시인 홈페이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Total 126articles,
 Now page is 1 / 7pages
View Article     
Name   박송죽
Subject   생명의 신비 그 아린 생의 반추

생명의 신비 그 아린 생의 반추
            -문단 생활 60년을 회고 하면서-

나의 시는 내 생의 아픔이다. 따라서 죽음을 거처 다시 소생하는 환희의 빛, 실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전 생애를 건 열망이다.
생을 사랑하듯 시를 사랑하며 가장 아픈 가슴으로 가장 슬픈 독자의 영혼 밭에 가서 뜨겁게 살 부비며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타들어가는 불꽃 심지이고 싶다.
어차피 우울하고 답답한 절망과 어께동무하며 고통으로 시금술 되어 가는 나의 삶 속에서 때때로 나는 슬픈 가시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세상 빛을 안고 잃어버린 나, 잃어버린 시대에 현주소를 찾고 싶다.
문학이 인간구원의지를 부각시켜주는 구심점의 역할을 담당한다면 종교 역시 인간구원을 위하여 참혹한 죽음을 거친 십자가의 부활신앙 안에 인간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학 교수이며 신학자인 H 뉴엔은 “생명은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죽음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은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라고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현주소인 신앙 안에 용해 된 문학이나 신앙이나 한 맥을 이어가는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길이란 진실로 내가 나 답 게 되어야하는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출발이자 하느님의 본질인 모상 안에 완전히 흡수되어 내가 나다워지는 것으로 그 분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삶의 중심 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내 시력(詩歷)은 무력하고 내 삶 역시 안으로 여물지 못한 채 문학도 인생도 신앙도 진솔한 삶을 영위하지 못 하고 허무를 자초하며 팔십 평생 넘게 가쁜 숨 몰아쉬며 해 떨어진 간이역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언제 불러 주 실지는 몰라도 그 분이 부르시길 목마른 기다림으로 고독이라는 눈 덮인 산야에서 막차를 기다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고통이 신앙으로 이끌어 주었다면 문학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돌아가신 유치환, 김춘수, 이영도 선생님들께서 길잡이가 되시어 문단생활 60년 넘게 절필하지 않게 했다.
때로는 절망하고 회의를 느끼며  절필하고 싶을 때마다 큰 버팀이 되어 채찍과 격려가 되어 오늘까지 문학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숙명처럼 60년 넘게 절필하지 않고 문학의 길을 가고 있다.
  사실 나는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측의 권유로 <백일장>에 나가 <오직 부르고 싶은 이름이기에>란 시로서 장원을 하고 그 이후에 백일장마다 여러 가지 상을 타면서 <일출봉에 해 뜨거던 가곡 작사> 했던 김민부와 박태문, 장승재. 강상구,..등<<난>>이란 동인으로 활동할 때 김춘수 선생님께서 마산 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부산까지 오시여 문학 지도를 해 주셨다.
<일출봉에 해 뜨거던>  이란 가곡 작사로 널리 알려진 천재시인 고 김민부 시인이 <항아리 시집> 을 출간 하였을 때  모교에서 <보라 빛 의상>이란 내 처녀시집을 출간하여 준 것이 화제가 되어 민주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신문사에서 화제꺼리로 기사화 해 주기도 했다.
그 당시엔 추천제로 문단에 데뷔하기도 하였지만  처녀시집 출간한 것으로도 문인으로 인정되던 시절 이였기 때문에< 유치환, 홍두표, 조향. 김일구. 김태홍. 손동인 조유로...,시인>등  아무튼 지금은 다 기억 할 수는 없지만 선배 문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문단의 말석 자리에서 활동했다.
지금 조선호텔 맞은 편 <백산 문학관> 그 위치에 폐간 된 민주신문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민주신문 문화면에 내 시를 자주 게재하여 준시들 중에 <여울>이란 시가 작곡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고 진병덕 화백과 함께 <사제시화전>을 지금 용두산 공원에 올라가는 그 당시에 유일한 문화 공간 이였던 <칸타비례>에서 전시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전교생들이 줄을 서서 관람하게 하기도 하였다.
시화전을 마치던 날 여러 문인과 선생님을 모신 자리에서 김춘수 선생님께서<박송죽의 문학세계>에 대하여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고 그 이후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하여 문단에 데뷔 하였다  
김춘수 선생님은 너무 엄격하시여 선생님이 문단에 추천한 사람은 단 세 사람밖에 없을 만큼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도 조심스러웠던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오히려 박 군! 박 군이란 호칭으로 격이 없이 대하여주시던 유치환 선생님을 허물없이 대할 수 있어 좋았고 그 당시엔 유치환 선생님이 경남여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 퇴근 후 진병덕 화백 ,조순 선생님과 함께 학교 정문 앞 문방구에 가서 담소를 나누는데 겁도 없이 함께 적 쇠 위에 조개구이로 막걸리 한 사발씩 얻어 마시기도 했다.
김지향 시인이 울산에 얼마간 머무르고 있을 때 <울산 지부와 라이온즈클럽, 노타리 클럽>  초청으로 고 진병덕 화백님의 그림으로 시화전을 열게 되었고 그 때< 초청장의 발문>을 유치환 선생님이 써 주셨다.
그 이후 공직생활을 하다 결혼하게 되어 교장실을 방문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한참을 아무 말도 하시지 않고 침묵하고 계시다가  축하의 말 보다 “박 군! 아깝다”라는 말로 일축하시기에 그 당시에는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세월이 많이 지나고 절필 상태로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 선생님의 그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이처럼 유치한 선생님은 오리려 추천하여 주신 김춘수 선생님 보다는 더 마음속에 아직도  뜨거움으로 남는 것은 청마 선생님이시다.
통영시청에서 유치환 선생님이 돌아가신 1주기 추모 행사에  <푸른 생명의 깃발로 흔들리는>이란 추모시를 시청강당에서 낭송했고 고동주시장께서 낭송했던 시를 문학관에 두겠다고 달라하여 드렸으나 소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도 선생님은 금정산 <애일당>에 계시다 장전동으로 아담한 집을 사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자주 방문하여 때로는 자고 오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친정 부모 형제 다 돌아가시고 홀로 층층시야에 엄함 시집살이를 하는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시면서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데..!?”하고 시누이 여섯 명의 등살에 신경성으로 위벽이 헐어 구명이 날 정도로 위험하다는 진단소견을 말씀 드렸더니 친정 부모처럼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자주 전화를 주셨다.
아마도 마지막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전화가 와서 수필집 출간을 위하여 출판사에 간다 하시면서 “ 닭똥집 말린 것과 건삼을 갈아서 꿀에 재어 두었다 먹어라” 고 당부 하시고 며칠 이후에 신문으로 선생님이 돌아가신 비보를 접하시면서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은 아직도 잔잔한 여울로 남는다.  선생님은 언제나 한복으로 아름답고 청초한 모습을 보여주시던 선생님께서 수필 교정보려 가시기 위하여  보선을 신으시다가  지병인 고혈압의 압력에 의해서 운명하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너무도 뜻밖에 비보를 접하면서 멍 치 끝이 아리고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세분 선생님들은 내 문학의 길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고 이제 나도 이 지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오니 더더욱 지난날이 뜨거운 마음으로 생각난다.
이 처럼 사랑의 채무자로 부채만 안고 살아가는 이 무지하고 미련한 나이지만 자투리로 남은 내 생의 마지막 날 까지 부끄럼 없는 몸짓으로/ 가장 아름다운 목숨이 되기 위하여 사랑으로 교감하며 영혼의 안테나에 포착되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그 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내 삶이 제단이 되고 움직이는 복음서가 되어 그 분의 심장 가운데서 타는 불길 사랑으로 오직 믿음의 반석 위에 십자가을 세워 두고 죽기까지 짝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그 분 안에서 내 생의 마침 표를 찍고 싶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십자가을 세워둔 삶과 생명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비록 죽음이었으나
                  오늘은 새 생명이고
                 어제는 어둠이었으나
                   오늘은 빛이기에
             어제는 신음하는 눈물이었으나
         오늘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진정, 진정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생명의 본질
              내 영혼과 삶이 춤추게 하는
             당신과 내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2020 카톨릭문학 특집





 Prev     변화되어야 할 삶
박송죽
  2020/02/10 
 Next     작은 존재의 하나의 의미
박송죽
  2019/11/25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lifesay
Copyright all right reserved psjpoem.pe.kr. Designed by San1000.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