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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분재<盆裁>




분재를 한다.
특별한 기술적인 방법을 익혀 배운 세련된 솜씨가 아닌 그저 무지한 애정과 정성을 쏟아 심어 키워보는 정도의 나의 분재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실소를 금하지 못할 연약한 풀이거나 이름 모를 꽃나무들로 회귀성의 가치도 없는 잡목, 잡풀 정도로 심어보는 분재이다.
분재에 대한  이론은 잘 모르지만 분재의 참뜻은 깊고 심오한 대 자연의 풍경을 자그마한 분재에 축소하여 옮겨 담아 그 분경<盆景>의 아름다운 풍치를 즐겨 감상하며 그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내 안에 키우고자 하는데 그 참 뜻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장장<長長>히 살아온 내 인생을 이렇다 하고 정리 축소시켜 남 앞에 떳떳이 내 놓을 수 없듯이 내 길들이지 않고 서툰 무자비한 손길로 귀한 생명을 키우기보다 더 많이 목숨을 앗아가는 잔인한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단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의미의 자화상을 그 안에서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에 대한 강렬한 몸짓 속에서  스스로를 재확인  하고 싶은 삶의 확인과도 같은...,
그런 애정 안에는 무지가 죄일 수 있듯이 무지한 애정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의 귀한 교훈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그루의 나무를 분에 옮겨 심는다는 것은 산고를 치룬 대가로  한 생명을 잉태하여  흰 피인 젖줄을 물리는 어미의 심정과도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때로는 무자비 하리만큼 내 이기로운 행위로, 때로는 잔인 하리만큼 가혹한 매질로 귀여운 자식 그릇됨 없이 키워 보겠다는 엄마의 심정으로  인정사정 없는 아픈 매질로 가지치기나 교정을 시도한다.
날카로운 가위로 혹은 철사로 자연적인 풍경 미와 형태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시도되는 이 작업은 바로 내 인생을 교정시키고자 하는 작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죽은 나무나 바위 돌 위에 나무를 심는다.
죽은 나무의 등걸에 접목되어 새 생명으로 자라주는 나무를 보면 정말 신비로우리만큼 경이로운 생명의 아픈 반추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하여 진다.
  인정 사정없이  모질게 다루어지는  그  아픈 매질에도 아무런 반항 없이 죽은 나무에서나 돌 위에 용케도 뿌리내리며  끈질기게 다소곳이 운명에 순종하는 여인 같은 자세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주는 이 나무들.
그들의 아픈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연약하리만큼 나약성으로 적은 고통도 참지 못하여 죽겠다는 푸념을 예사로 털어 내놓는 부끄러운 자신에게 더 큰  교훈의 경종으로다가 온다.
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의 눈길 속에 총애를 받는 꽃나무보다 시골 신작로 길 외진 길섶에서 먼지를 하얗게 둘러쓰고도 자기의 소임에 소흘함이 없이 꽃을 피우고 있는 이름 모르는 꽃과 나무에 더 애정이 간다.
그들은 순박하리만큼 진실하고 진실하리만큼 소흘함이 없는 사명감으로 남모르게 사라져 가는 꽃이나 나무들이다. 그 이름 없는 꽃들이나 나무들은 누가 봐 주거나 칭찬하여 주지 않아도 자기의 소임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나는 종종 분재 전시장에서나 소장하여 둔  잘 다듬어 키워온 많은 분재를 보아왔다.
그러나 내 무지한 애정으로 키워온 키 작은 아기 사과나무,  동백, 포도나무 와  고목 나무에 접목하여 자라주는 잡나무나 잡풀  등에 더 애정의 비중이 가니 왠 일일까.
이런  분신처럼 느껴지는 나의 분재는  일품을  과시하는 흑 송, 죽 송, 잣나무, 가문비나무, 편 나무, 삽 나무 ,진백 나무 동백나무 등과 같이 제나름의 운치는 갖추지 못한 그들이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제나름대로의 앙증스러운 모습을 갖추고 끈질기고 강렬한 삶의 의미를 진하게 발산하며 자라 주는 것이  더 고맙다.
  그들은 하나 같이 사랑을 요구한다. 마치  어린 아기에게 어미가 애정을 쏟아주는 만큼  튼튼하게 잘 자라주는 것과 같이 한시도 소흘함 없는 관심과 애정을 요구한다.
그런 나의 분재나 꽃나무는 나의 분신이며 내 자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바쁘거나 아파도 그들을 돌봐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오늘도 게으름 없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짐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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