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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선택의 기로 (岐路)

  
우리는 하루하루 혹은 매순간 순간마다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된다. 눈만 뜨면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선택이라는 과제 앞에서 망서러진다. 왜냐하면, 선택이란 타의가 아닌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되고, 이 결정은 남이 대신 할 수 없는 인생의 승패와 행과 불행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선택과 결단은 동시에 우리들의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수단이 된다.
어쩌면 끝없는  우리들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매순간마다 선택된 자리에서 미완성한 자아가 완성에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빛과 어둠이 양면성으로 공유하게 하듯이 자기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귀로에서  그때의 나의 선택이 현명 하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과대학을 가라고 간곡히 권유하시던 어머님과 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꿈만 먹고 사는 문학의 길을 선택하여 40여년 가까이, 산고의 고통과 고뇌의 아픔으로 길들어져 가는 세월 속에서도, 작품다운 작품도 쓰지 못하면서도 숙명처럼 오늘을 끈질기게 매달려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 결정 능력이 부족했던 철없는 그 시절에, 나에게 숙명처럼 이 길을 선택하게 된 동기부여는 고등학교 시절인 것 같다.
이 곳 저 곳 백일장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은 경력으로 하여 1958년도에 <보라 빛 의상>이라는 처녀시집을 학교 측에서 출간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우리 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계시던 고 진병덕 화백님께서 그림을 그려 시화전까지 하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지금은 돌아가신 고 김춘수 선생님께서 문단에 데뷔시켜 주셨고 오늘까지 문학의 길을 가는데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 문학은 내 인생의 전부처럼 외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은 세월의 무게보다 더 곱절 난 갈증으로 나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와서, 그 때의 나의 선택과 판단이 과연 현명하였던가 하는 것은 언제나 물음표를 달고 미련의 아쉬움처럼 따라 다니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후해해 봐도 소용은 없지만, 그 당시에 우리 학교 재단 이사장님께서 새로 개설한 H 초급대학에 출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고 제의가 왔을 때, 나는 무척 갈등과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두 살 난 큰아들과 수년 동안 당뇨, 고혈압으로 자주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 받고 계시는 시어머님의 병 수발이라던가, 병적으로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적인 모순 때문에 평시에도 문학을 한답시고 가정을 도외시하는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용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친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후배가 모교에 가사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가, 아이 둘을 두고 이혼하는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도 않고  대학에 출강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심의 위안으로 삶의 현명한 선택과 결정은 현재에 주어진 상황에서 충실하고 만족하며 그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과 인내로 자기 연마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문단생활을 해 오면서 가장 아픈 후해를 안게 자극하는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신중성 없이 결정해버렸던 그 때의 나의 선택에 대하여 후해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의 보호막 속에,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준 아이 녀석들이  이제는 저마다 사회의 일원으로 저들의 몫을 잘 감당하고 있으니 다소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나는 어제 TV를 보다가 뉴스 시간에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사람, 김태국 박사>라는 큰 타이틀로 세계 최초로 매직기술로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개발을 성공적으로 하여 미국에 있는 저명한 과학지인 싸이언스지 발표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KBS,MBC,YTN 등과 같은  TV화면에서 큰 아들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그저 고맙고 대견한 감사의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큰 아들은 미국에 있는 하바드대학, 서울대학.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밤과 낮의 시차 때문에 귀국하면 그 시차를 견디기 위하여 약을 복용하며, 힘에 겨운  생활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온 터였다. 그런데 세계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석학<과학자>들도 해 낼 수 없었던 매직기술로 인류에 모든 병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신약을 개발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일인가. 그리고 둘째 아들 역시 사랑으로 목숨까지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제가 되어 외롭고 고독한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막내 딸 역시 교직 생활과 말씀이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씨앗을 심어 보겠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 모두가 하나같이 명예와 권력과 부가 지상의 최대 목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최선을 다하여 삶의 균형을 이루는 구심력이 되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꼭 필요한 일을 하여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창출하는데 적소 적절하게 쓰여 지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또 2006년 6월 11일에 미국의 저명한 과학지인 <네이처 캐미토콜>에 노화억제와 침해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했다는 각종 메스콤의 보도를 접하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살기를 원하시면서 치유의 큰 도구로 써 주시는데 대하여 감사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것도 숨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끝없는 노고와 피와 땀의 결실로 이루어져야하는 헌신적인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듯 내 생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후해로 남던 그 때의 나의 어리석게만 생각해지던 선택 이였으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들을 위한 생명의 텃밭에서 그런대로 고통으로 삭혀져 거름이 된 내 삶의 영토위에 울울 청청한 생명의 나무로 잘 자라주는 그들이 하나 같이= 내일을 위한 푸른 소망 속에  누군가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가 되길 원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삶이 복음서가 되어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과학자로 빛을 심는 큰 아들에게--

장한 아들아-,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영적인 아버지이신 그 분을 닮기 위함이요,
닮는다는 것은 날마다 시마다
내 뜻이 아닌 그분 뜻대로
생명의 나침판이 되어 주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분과 함께 그 분 안에서
수직과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며
삶이 기도가 되고 일치의 성사가 되고 복음서가 되어
마음과 뜻과 행동과 목숨까지도
온통 복사꽃으로 피어나는
사랑 실천의 십자가의 길일 것이다.

오늘 날 네가 원천기술인 난치병치료의
신약개발이 2005년 7월 5일자에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김태국 박사”라고
미국 <싸이언스>지에와 함께 지상에 보도 될 때
너무도 감격스러운 기쁨이라
뜨거운 눈물의 감사기도로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사랑자체이신 그 분께서 생명법칙을 깨닫게 하시어
피 묻은 십자가로 인간을 구원하셨듯이
사랑과 연민으로 눈물까지 흘리시며
죽어서 냄새까지 나는 라사로을 살리셨듯이
또한 한갓 어부였던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할 때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걸을 수 있었듯이
인간을 도구로 쓰시는 그 분의 섭리에 따라
온전한 삶 온전히 봉헌되는 너에 생의 전부가 되기만을....,

미안하다 프란체스코야-!
살아오면서 가난을 업으로 살아야 하는 공무원인 아버지와
꿈만 먹고 사는 시인인 엄마라
배고프게 한 시절도 많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처음 부임한 <롱아일랜드 >연구소 재직 할 때
둘째 아들을 낳고 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고
스쳐가는  며느리의 말을 듣고
이 엄마는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아픔 속에
미안하고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너는 미국 갈 때도 가서 공부할 때도
그저 풍족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그 말만 믿고
동전 한 닢 부쳐주지 않았던 이 엄마였으니
어떻게 너에 땀과 노고와 눈물의 고통으로
담금질 되고 연단되어 축복받은 영광된 이 기쁨을
마냥 기뻐만 할 수 있겠니.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지도상에서도 작은 나라.
태평양 상공에서 점하나로 보이던 작은 나라.
“나의 조국이며 생명의 뿌리인
우리나라를 세계 속에 한국으로 만들리라“
다짐하며 결심하며 기숙사에 함께 기거하던
일본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분투노력한 결과
독일 도서관장 아들이 6년만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는데
3년만에 총장님의 칭찬과 함께 박사 학위를 받았던
장한 아들아!!

세계의 명석한 과학자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요술이라고까지 명명한 <매직기술>로
2개월 동안 세포분열하다 죽어가는 세포를
4개월까지 연장시킬 수 있는
“노화된 세포 안을 마술처럼 들어다 보면서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특이한 분자기작을 규명“하여
미국의 유명한 과학지인 <네이처 케미토콜>에
2006년 6월 11일에 또다시 보도 될 때
이 엄마는 우연히 TV뉴스를 보다
기쁨과 감사의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서도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니?

그것은 온전히 하느님께 쓰여 진다는 것은
“나는 죽고 너는 살아야 한다. ” 는
절대헌신의 희생이 요구되는
사랑의 방정식이기 때문에
오늘의 이런 성과가 있기까지 밤낮의 시차도
적응되지 않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약으로 몸을 가동시켜야했던 너에 노고와
육체적 건강이 나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란체스코야-!! 언제나 네가 그러했듯이
<미데멘재단><록펠라재단><암센타>에서
우수한 과학자로 상을 받고도 이 엄마에게
기쁜 소식조차 입 다물고 있었던 겸손한 마음으로
네 성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임을
네 이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을
드높이 세상천지에 영광 드리며
바라시고 원하시는 그 분의 뜻에
응결된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고모라성처럼 하느님의 존재마저 부인하며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이 시대에
생명존재의 근원이신 그 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오늘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간다는
복음 선포와 그 분의 치유의 손길이 되어
모든 병든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초석이 되어
그 분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뜻만을 찾는
온전한 삶, 온전히 봉헌되는 나날 되고 전생이 되어 주기만을
간구의 기도와 함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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