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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시간의 타임머선을 타고 ,

    
--향불로 태우는 영은사의 불심<佛心>--

                      

  살아가는 인생여정이 잃어버린 자아(自我)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라면 그 순례의 길에서 가슴이 따뜻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축복과 기쁨으로 다가오는 행복일까.
어느 해 보다도 병약한 체질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속 알이 병처럼 호되게 봄 앓이를 길게 한 탓으로 모처럼 설이며 기다리던 정신적인 개혁의 선구자인 중국의 루쉰 문학기행에 차질이 있을까 염려로운 마음으로 그 동안 병원을 들락 거렸다.
그러나 다행히 열이 입술로 터져 입에 물집이 생겨 간간히 피가 묻어나기도 하였지만 시인 박미정씨의 애뜻한 사랑이 담긴 약으로 치유 받고 마치 초등학교시절에 소풍을 떠나던 들던 기분으로 우정과 함께 심화되고, 자연과 함께 동화되면서 마음을 씻으며 비우며 마주선 자연과 하나로 결합되어 순수로 되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정말 얼마 만에 만끽하여보는 개방된 나만의 자유인가.
팔년이란 긴 세월 동안 뇌경색으로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었던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철창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던 갇힌 생활에서 아픔과 고통으로 곰삭으며 바보가 되어가며 죽지 못하여 살아가던 그 세월의 강을 거슬러 지금 나는 어디쯤 와서 그이의 곁으로 갈 차비를 챙기고 있을까.
사별<死別>하여 3년 동안 참으로 그이의 빈자리가 그렇게 소중한지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닫으며 그이의 흔적에 눌러 스스로 혼자 갇혀 밥 한 술을 입에 넣어도 목이 메이는 미안한 자리였는데 이렇게 동료문인들의 덕분에 열린 자유의 날개를 달고 광활한 대지를 밟으며 영혼의 심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존재의 경이로움이며 살아 있기에 나에게 주어진 축복의 감동이라 그저 감사할 뿐 이였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비행기를 타면 2시간 정도의 가까운 이웃나라다. 정말 국경 없는 하늘아래 세계는 한 지붕 밑에 한 가족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이번 여행 이였다
언어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고 생긴 모습도 조금씩 다르지만 왠지 다양성 속에 단일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삶의 풍경을 뜨겁게 내 마음 속의 오목렌즈에 수채화로 그려 담았다.
나는 마치 타임머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가 몇 천 년 전의 중국이라는 문화의 도서관 속에서 고전이라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읽는  것처럼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만나는 사물마다 감동과 감격으로 감탄사를 연발해야 하는 대륙의 거친 야망과 야성의 기질을 읽으면서 불교가 중국 문화에 끼친 영향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처럼 신앙이란 인간의 복된 삶을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개인이나 나라마다 믿고 신뢰하는 종교관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생면존재의 원뿌리는 삶이 길이 되고 진리 되고 생명이 되어야하는 절대자의 주권 안에 초자연적인 영원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삶의 원뿌리는 향유하는 생명의 법칙 안에 공존과 공생의 원칙이 성립되고 그 원칙 속에 사랑은 신앙에 있어서 생명이며 출발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왜냐면 우리는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서는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매마르기 쉬운 영혼을 위하여서는 종합비타민이나 다름없는 초월적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영혼을 살찌우며 또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신앙 안에 내재된 교리일 것이다.
나는 신비의 베일 속에 쌓여있는 중국 문화의 혁신적인 종교이기도한 불교가 이러한 사랑의 정신이 발로가 되었기 때문에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영은사의 화려하고 웅장한 불상들을 보면서 더더욱 짙게 느낄 수 있었다.
  백화사, 소림사, 영은사는 중국의 3대 사찰 중에 하나이다.  그 중에 영은사는 항주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비래봉을 마주하고 있다.  비래봉에는 10~14 세기경에 만들어진 석불 330개가 전시되어 있고 동진시대에 인도의 승려 혜리에 의하여 지어졌다 하며 선종 10대 때에 사찰 중에 하나라고 한다.
대웅전의 높이는 33,6미터의 뛰어난 건축물이고, 보전 안에는 24,8미터의 여래불상이 이 있다. 그리고 대전 앞에는 송대에 건축된 8각 9층의 석탑이 있다.
천왕전에는 운림선사<云林禪寺>라고 Tm여진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청대의 강희<康熙> 호아제의 자필로 알려져 있다. 강희 황제가 남쪽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려서 북고봉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것을 보고 영은사 라는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한다.
영은사의 볼거리 중에 하나는 유명한  비래봉이다. 이 비래봉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209미터 봉우리는 인도에서 날아왔다는 설과 함께 헤리가 갔다 왔다 해서 이름을 비래봉 이라 붙였다 한다.
암벽상에는 오, 송, 원에 이르는 석각 조상이 330개가 새겨져 있고 그 중에 미륵좌상은 얼굴이 개성적이라 독특하게 보였다.
타불 행자목은 깍아서 만든 것으로 항상 불교를 보호하면서 석가모니를 마주보는 불상이라 한다. 이 위타불을 마주보는 곳이 대웅전인데 못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24개의 행자목을 끼워서 만든 석가여래 좌상이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나쁜 일만 일삼던 나한상들이 석가모니를 만나서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났다는데 이 나한상들이 순동으로 500개나 만들어졌는데 제각기 다른 표정들이라 보기만 보아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원의 경내의 불상 앞에서나 향불을 피워 두는데 이 곳 영은사는 발길 닿는 곳마다 다발로 묶여진 향에 불을 댕겨서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들이 특이하게 보였다.
나는 한 시간을 넘게 소유되는 사찰의 경내를 돌아보면서 기도란 인간이 어떤 형식이던 간에 자기의 소원을 생활 속에서 건져 올려 신<神>에게 바쳐지는 서사시<徐事詩>라는 생각을 문득해 보았다.
3박 4일의 짧은 여정 속에 많은 중국 문화에 대한 실상<實像>들을 뜨겁게 마음에 담아 오면서 못내 아픔의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국땅인 상해에서 임시정부까지 만들고 애민 애족에 불타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윤봉길 열사와 모든 애국선열들이 지금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치욕적인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후손들의 과오를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버지 북에 묻고 어머니 남에 묻고 살 추린 바람 속에 70 평생의 흰머리를 이고 아버지의 묘소 한번 찾아보지 못하는 이 불효녀식의 불효을 용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받아 놓은 날처럼 이 지상을 떠나야만 할  그 동안 꿈에도 그리던 고향인 이북 땅을 한번이라도 밟아 볼 수 있을까?   비행기는 국경 없는 하늘에 흰 구름으로 펼쳐져 있는 운애<雲涯>의 강을 미끄러지듯이 나르고  향수에 젖은 내 마음은  원한의 가랑비만 오락가락 내리게 한다.
--향불로 태우는 영은사의 불심<佛心>--

                       朴 松 竹

  살아가는 인생여정이 잃어버린 자아(自我)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라면 그 순례의 길에서 가슴이 따뜻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축복과 기쁨으로 다가오는 행복일까.
어느 해 보다도 병약한 체질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속 알이 병처럼 호되게 봄 앓이를 길게 한 탓으로 모처럼 설이며 기다리던 정신적인 개혁의 선구자인 중국의 루쉰 문학기행에 차질이 있을까 염려로운 마음으로 그 동안 병원을 들락 거렸다.
그러나 다행히 열이 입술로 터져 입에 물집이 생겨 간간히 피가 묻어나기도 하였지만 시인 박미정씨의 애뜻한 사랑이 담긴 약으로 치유 받고 마치 초등학교시절에 소풍을 떠나던 들던 기분으로 우정과 함께 심화되고, 자연과 함께 동화되면서 마음을 씻으며 비우며 마주선 자연과 하나로 결합되어 순수로 되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정말 얼마 만에 만끽하여보는 개방된 나만의 자유인가.
팔년이란 긴 세월 동안 뇌경색으로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었던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철창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던 갇힌 생활에서 아픔과 고통으로 곰삭으며 바보가 되어가며 죽지 못하여 살아가던 그 세월의 강을 거슬러 지금 나는 어디쯤 와서 그이의 곁으로 갈 차비를 챙기고 있을까.
사별<死別>하여 3년 동안 참으로 그이의 빈자리가 그렇게 소중한지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닫으며 그이의 흔적에 눌러 스스로 혼자 갇혀 밥 한 술을 입에 넣어도 목이 메이는 미안한 자리였는데 이렇게 동료문인들의 덕분에 열린 자유의 날개를 달고 광활한 대지를 밟으며 영혼의 심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존재의 경이로움이며 살아 있기에 나에게 주어진 축복의 감동이라 그저 감사할 뿐 이였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비행기를 타면 2시간 정도의 가까운 이웃나라다. 정말 국경 없는 하늘아래 세계는 한 지붕 밑에 한 가족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이번 여행 이였다
언어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고 생긴 모습도 조금씩 다르지만 왠지 다양성 속에 단일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삶의 풍경을 뜨겁게 내 마음 속의 오목렌즈에 수채화로 그려 담았다.
나는 마치 타임머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가 몇 천 년 전의 중국이라는 문화의 도서관 속에서 고전이라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읽는  것처럼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만나는 사물마다 감동과 감격으로 감탄사를 연발해야 하는 대륙의 거친 야망과 야성의 기질을 읽으면서 불교가 중국 문화에 끼친 영향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처럼 신앙이란 인간의 복된 삶을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개인이나 나라마다 믿고 신뢰하는 종교관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생면존재의 원뿌리는 삶이 길이 되고 진리 되고 생명이 되어야하는 절대자의 주권 안에 초자연적인 영원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삶의 원뿌리는 향유하는 생명의 법칙 안에 공존과 공생의 원칙이 성립되고 그 원칙 속에 사랑은 신앙에 있어서 생명이며 출발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왜냐면 우리는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서는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매마르기 쉬운 영혼을 위하여서는 종합비타민이나 다름없는 초월적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영혼을 살찌우며 또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신앙 안에 내재된 교리일 것이다.
나는 신비의 베일 속에 쌓여있는 중국 문화의 혁신적인 종교이기도한 불교가 이러한 사랑의 정신이 발로가 되었기 때문에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영은사의 화려하고 웅장한 불상들을 보면서 더더욱 짙게 느낄 수 있었다.
  백화사, 소림사, 영은사는 중국의 3대 사찰 중에 하나이다.  그 중에 영은사는 항주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비래봉을 마주하고 있다.  비래봉에는 10~14 세기경에 만들어진 석불 330개가 전시되어 있고 동진시대에 인도의 승려 혜리에 의하여 지어졌다 하며 선종 10대 때에 사찰 중에 하나라고 한다.
대웅전의 높이는 33,6미터의 뛰어난 건축물이고, 보전 안에는 24,8미터의 여래불상이 이 있다. 그리고 대전 앞에는 송대에 건축된 8각 9층의 석탑이 있다.
천왕전에는 운림선사<云林禪寺>라고 Tm여진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청대의 강희<康熙> 호아제의 자필로 알려져 있다. 강희 황제가 남쪽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려서 북고봉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것을 보고 영은사 라는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한다.
영은사의 볼거리 중에 하나는 유명한  비래봉이다. 이 비래봉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209미터 봉우리는 인도에서 날아왔다는 설과 함께 헤리가 갔다 왔다 해서 이름을 비래봉 이라 붙였다 한다.
암벽상에는 오, 송, 원에 이르는 석각 조상이 330개가 새겨져 있고 그 중에 미륵좌상은 얼굴이 개성적이라 독특하게 보였다.
타불 행자목은 깍아서 만든 것으로 항상 불교를 보호하면서 석가모니를 마주보는 불상이라 한다. 이 위타불을 마주보는 곳이 대웅전인데 못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24개의 행자목을 끼워서 만든 석가여래 좌상이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나쁜 일만 일삼던 나한상들이 석가모니를 만나서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났다는데 이 나한상들이 순동으로 500개나 만들어졌는데 제각기 다른 표정들이라 보기만 보아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원의 경내의 불상 앞에서나 향불을 피워 두는데 이 곳 영은사는 발길 닿는 곳마다 다발로 묶여진 향에 불을 댕겨서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들이 특이하게 보였다.
나는 한 시간을 넘게 소유되는 사찰의 경내를 돌아보면서 기도란 인간이 어떤 형식이던 간에 자기의 소원을 생활 속에서 건져 올려 신<神>에게 바쳐지는 서사시<徐事詩>라는 생각을 문득해 보았다.
3박 4일의 짧은 여정 속에 많은 중국 문화에 대한 실상<實像>들을 뜨겁게 마음에 담아 오면서 못내 아픔의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국땅인 상해에서 임시정부까지 만들고 애민 애족에 불타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윤봉길 열사와 모든 애국선열들이 지금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치욕적인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후손들의 과오를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버지 북에 묻고 어머니 남에 묻고 살 추린 바람 속에 70 평생의 흰머리를 이고 아버지의 묘소 한번 찾아보지 못하는 이 불효녀식의 불효을 용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받아 놓은 날처럼 이 지상을 떠나야만 할  그 동안 꿈에도 그리던 고향인 이북 땅을 한번이라도 밟아 볼 수 있을까?   비행기는 국경 없는 하늘에 흰 구름으로 펼쳐져 있는 운애<雲涯>의 강을 미끄러지듯이 나르고  향수에 젖은 내 마음은  원한의 가랑비만 오락가락 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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