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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아련한 추억 속에 등나무 집

  
                
그 집을 떠나 온지도 벌써 사십 여 년이 훨씬 넘게 지나 간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는 늘 철 따라 연보라색 등꽃들이 주렁주렁 피고 진다.
마치 어릴 때 자라던 친정집에 대한 해묵은 향수처럼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가셔지지 않고  등꽃이 필 무렵이면 왠지 뭉클한 뜨거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저미어 오면서 그리움으로  마음의 안섶을 파고든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한 신접살림에 명색이 내 집이라고 힘겹게 처음 장만하게 된 감회도 컸지만 그 보다도 아름드리 큰 등나무에 첫 눈에 반해서 사게 되었던 그 집에 대한 애착과 미련은  많은  세월이 지나가도 가셔지지 않는다.
  나는 이사를 하여 얼마 동안은  등나무 집에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고  천리향, 묘과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등과 같은 과일 나무와  여러 가지 꽃나무들을 사다 심느라고 푼돈도 말랐지만 온통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애정과 정성을 드려 꾸며 놓은 집인데 아이들 아버지는 평지 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드나들기에 힘이 든다고 때때로 짜증 섞인 원성 이였다.
나는 그 집을 계약할 때 등나무에만 홀려 집 구조도 제대로 보지 않고 서둘러 계약한 나의 잘못에 대하여 한 편으로는 후해도 하였지만 아이들 아버지 앞에서는 가족들의 건강을 위하여서는 오히려 조금 높은 곳에 위치 한 것이 더 좋아서 사게 되였다고 변명 아닌 변병을 하기가 일 수였다.
하긴  비좁게 들어서서 텃세를 부리는 도심지의 한 복판에서 만고풍상 다 겪으며 아름드리 큰 등나무가 어떻게 아직까지 뿌리내리고 존재할 수 있었으며 우리 같이 인생 초년생인 가난뱅이로 이런 넓은 뜰과 아름다운 등나무 꽃이 해마다 피고 지는 집을 살 수 있었겠는가.
그러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경험 없이 복덕방의 말만 믿고 그리고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등나무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서둘러 경솔하게 계약을 한 나의 과실은 두고두고 후해를 안게 하는 부담감과  낭패감을 갖게 했다.
보통 계약일로부터 한 달 까지 잔금을 지불하게 되어 있는 것이 통례이지만,  집 주인은 집을 짓는데 재료값이 모자란다 하여 보름 만에  전액을 지불 해 달라 요구했고, 나도 잔금이 은행에 저축되어 있는 터라 그들의 편리를 봐 주기 위하여 보름 만에 전액을 완불하여 주었다.
그러나 전액을 받고도 두 달이 지나도록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빨리 비워 달라하면 더 큰 소리로 화를 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어서 법률 사무소를 경영하는 친척에게 이런 딱한 사유를 이야기 하였더니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알고 보니 집도 짓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뱃장 좋게 눌러 있는 것이 자기 오빠가 국회위원이라는 빽 줄 때문 이였던 것 같다.
하는 수 없어 법에 의뢰하여 법대로 처리되어 집을 팔고 3개월이 나지나서야 겨우 이사를  갔다.
나는 지금도 그 집 주인 아주머니만 생각하면 그 때 마음고생을 했던 일이 되살아나 미련까지도 싹 가시게 하지만 그러나 난생 처음  마련한 내 집이라 그런지 세상에서 우리 집 만큼 좋았던 집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대로 큰 채에 방이 3개가 있고 아래채에 방2개와 부엌까지 따로 있어 전세 주기에 안성맞춤 이였다. 그래서 돈도 필요한터라 서울에서 부산법원으로 전출 오게 된 마음씨 착한 젊은 부부에게 전세로 방을 빌려 주었다.
새댁은 시집와서 처음 겪는 타관살이라 나를 친 언니처럼 따라 주었고 나도 친 동생처럼 허물없이 아끼고 사랑해 줄 수 있어 서로 외롭지 않아 좋았다.
나는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언니, 언니 하고 허물없이 형제처럼 대해주는 새댁이 그럴 수 없이 정이 갔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남편이 출장 갔다거나 혹은 간혹 술이라도 한잔하고 와서 술주정이라도 하는 날에는 밤중도 모르고 갓난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랫목 차지를 하며 응석 부리기가 일 수였다.
그렇게 허물없이 내 마음의 안섶에 뜨겁게 살고 있던 그 새댁도 헤어져 오랜 세월 속에서 지금쯤 노숙한 중년으로 아니면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고 초노의 연륜을 안고 간혹 그 등나무 집을 생각하며 그리운 정을 되새겨 볼까?
사람의 정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 서울로 발령 받고 떠나던 날, 그 새댁도 나도 목이 메여 할 말을 잊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렀는지 모른다. 그런 새댁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표현할 수 없이 썰물 밀물과 같은 그리움의 모래톱을 쌓게 된다.
나는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이면 지금도 아파트 베란다의 창을 통하여 하늘을 처다 보면 마치 등나무 아래 넓은 평상에 누워 수없이 반짝이는 보석 같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그 등나무 아래 누워 있는 착각 속에 빠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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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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