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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내심으로 앓고 있는 영혼의 고질병




  內心으로 앓고 있는 영혼의 고질병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신체에 이상이 생기면 병을 앓는다.
  신체의 이상이 생겨서 앓게되는 병은 약으로나 현대의술의  발달로 쉽게 완치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약으로도 어떤 의술의 힘을 빌려서도 고칠 수 없는 병을 두고 지병이니 혹은 불치병이라 한다.

  이 불치병은 누구나 한번 걸리게되면 죽을 때까지 평생을 아픈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숙명처럼  받아드려야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도 모르게 지병을 앓고 있다.
너무도 긴 날을 두고 앓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 병의 자체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 오늘의 나를 다스리고 있는지 모른다.
  때로는 환희의 기쁨으로 환생하는 날개를 달게도 하고 때로는 좌절에 빠져 추락하는 날개 잃은 새의 처절한 모습이 되어 자기 한탄(둔재라는) 쓴잔을 마시며 절망 할 때도 많다.

  그러면서도 버리려해도 버리지 못한 채 오늘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앓아야하는 이 고질병은 때때로 내 의지와는 상반된 틀에 나를 가두어 둔 채 늘 감금을 요구한다.

  사실 나는 둔재라 사물의 아름다운 내면의 깊이 있는 관조나 혹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줄 만한 격조 높은 詩나 수필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지만 어쩌다보니 긴 날을 두고 스스로 구속을 요구하는 이 고질병과 <문학> 친숙해 졌다.

  그렇다면 내 이생을 걸고 사력을 다하여 매료당한 채 지향하는 이 문학이란 도대체 어떤 마력이 있어 오늘까지  자기 자초의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버리지 않고 일념으로 매달려 끙끙거리고 있을까.

  그렇다면 문학이란 무엇일까-?  이런 주제를 두고 자기 생각을 말해 보라하면 그 포괄적인 정의나 지론이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문학이란 인간 중심 안에서 재창조  되는 미적 아름다움의 추구라 말하고 싶다.

  이 아름다움의 추구는 우주적인 사랑 안에 세상만물이 한 태 어우러지는 애정의 중심 안에서 재창조되는 미적 아름다움의 추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미적 추구 안에는 자기 발견의 인식과 사물의 물상에 대한 내면적인 깊이에 까지 접근하는 애정 어린 관찰과 명상으로 하여 뜨겁게 서로가 서로의 교감대를 형성하고 혼합되어 흐르는 피의 흐름으로 생성되는 또 하나의 우주적인 자연 순리 안에서 깊게 뜨겁게 보듬어 표현되는 사랑의 울림이며 영혼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비단 문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풍요로운 생명 자체의 리듬을 형성하는 미적인 추구이며 따라서 그 미는 아름다움만으로 끝나지 않는 생명의 본질 안에 정신적인 자양분으로 남게 되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를 높이 평가 할 수 있다고 본다.

  하긴 과학과 기계와 물질 문명의 다원화의 발달로 모든 분야가 정신없이 급속도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 덕분에 며칠 전 인터냇을 통하여 미국 하바드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큰 아들이 근무하는 학교에 클릭 한번으로 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사는 귀여운 손녀와 손자의 얼굴도 전화 한 통화로 앉아서 서로 보면서 대화 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에 까지 왔으니 얼마나 현실적으로는 살기 좋고 편리한 세상이 왔는가.

  그러나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물질위주의 가치관으로 욕망이 비대화되어 가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 예술 그 자체가 인정받고  뿌리내리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이지만 이런 정신적인 황폐화로 인간성이 상실 되어 가는 시대 일  수록 문학의 지향도는 높고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힘에 겨웁다.

  가면 갈수록 하면 할수록 고통이라는 산고의 아픔을 치루어야 만이 얻을 수 있는 이 길에서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어쩌다 이 길을 택하여 사서 이 고생을 고질병처럼 앓으며 살아야 하는지 후해스러울  때도 많았다.

  예를 들면 어떤 이메지가 착상되어 사물의 감흥에 나도 모르게 감동 감화되어 즉흥적으로 쓰게 되는 詩나 수필은 마치 어떤 뜨거운 전율에 매료되어 쉽게 작품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매수와 날짜, 때로는 여름인데 겨울 주제의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해 오거나 아주 자신의 생각과는 상반된 청탁을 해 올 때 풀려지지 않는 숙제처럼 아무리 원고지를 메꾸려해도 메꾸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심정 앞에 수북히 쌓이는 파지가 참으로 딱한 내 모습 같아 측은 할 때도 많다.

  나는 문단 생활 40년이 훨씬 넘게 몸담아 왔지만   문학의  여정에서 정말 잊혀지지 않는 일이 몇 번 있다.

  그것은 98년도에 부산일보 문화부에서 청탁해 화요일마다 연재될<박송죽 의 문학세계>와 <평화신문 창간11 돐 축시>을 쓸 때 일이다.

  사실 두 지면 다 귀한 지면이라 필력은 없지만 쓰고 싶었다.
  부산일보에서 청탁하는 그 귀한 지면에서는 그래도 부족한 자신의 시관를  정리하여 독자와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공직에 재직 중이던 남편이 과로로 쓸어저 투병생활을하다 다시 쓸어져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한방을 겸한 동의의료원이 좋다하여 그 병원으로 옮긴 직후이기 때문 이였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몇 번 거절했지만 거듭 부탁하기에 마지못해 승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쓸려고 해도 생사귀로에 있는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 하는 지친 몸으로 그것도 병실 한 귀퉁이에서 정리되지 않는 감정으로 의무적으로 원고지를 겨우 겨우 메꾸며  연재하던 일이며 또 병원에서 에마라이 결과 막힌 곳이 너무 많아 수술도 불가능 할 것 같다하여  아들이 거주하는 미국에라도 가서 다시 치료해 보려고 여권 수속을 하는데 뜻밖에 평화신문사에서  창간 10돐 축시를 써 다라 청탁해 와서 곤욕을 치루었던 적이 있다.

  너무도 그 때 힘겨운 상황에서 격었던 일이라 그런지 요즘도 원고지에 글을 쓰려하면 그 때 그 일들이 되살아나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다는 것은 모든 분야가 다 그런 고통의 진액을 짜내어야 하겠지만 둔재인 자신으로서는 더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유행가사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밤낮 없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이 고질병!!

  생각하면 몽룡병 환자처럼 죽음 가까이 가서도 버리지 못한 채 <교통사고로> 장 기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메이면서도 내 잠재의식 속에서는 詩에 심취 되어   詩를 쓴 것 같다.

  그 때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와서 메모지에 섰던 <임종의 일기>가 그 해 출간된 < 저 어둠이 내게 와서> 제4시집에 수록된 것이 영상곡으로 작곡되기도 했지만 아뭏튼 죽음에 이르기까지 앓고 또 앓아야 하는 이 고질병 때문에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더 진한 아픔이 내게 와도 그 진한 아픔으로 열심히 이 병에 친숙하고 싶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 안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그대로 때묻지 않는 슬픈 고뇌로 손끝으로 만들어지는 글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이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는 진실 그대로의 영혼의 울음소리로  노래하고싶다.

                     부산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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