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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송죽
Subject   아픔의 미학, 시의 내적 성찰

                                           --거듭나는 투명한 영혼의 노래가 되기 위하여--
                  
                                  
기도는 시다.
시는 영혼의 울림이다.
따라서  기도는 절대자인 하느님께 인간이 살아가면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건져 올려 바  쳐지는 경건한 서사시다.
성실과 인내로 진솔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건져 올린 순수한 영혼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무엇 보다 맑고 투명해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혼돈과 무질서의 어둠으로 짓누를지라도 그 어둠을 가시게 하는 빛이 되기 위하여 보다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문학의 중심 테마에 초점을 맞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하여, 혹은 밝은 평화로운 천국의 모형도와도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이 시력<詩力>에 응집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하느님의 귀중한 예술품이라면, 우리의 삶도 하루 하루가 전력투구로 연마되고 다스려져야 하는 창조적인 예술품과도 같은 소중한 삶이 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종교와 문학>은 서로 일치된 관념으로 결합하여 인간의 구원의지를 부각시켜주는 구심점의 역할로 세상 아름다움을 재창출되는 근원적인 뿌리가 되고 모든 예술의 바탕이 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바꾸어 표현하면 시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에 대한 표현이며 가장 순수한 혼의 울음<노래>으로 미화시킨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만큼 시의 본질이나 개념을 꼬집어 어떤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어려우나 언어의 한계성을 초월한 순수 미의 창조가 되는 언어라는 연금술과 만나 신선한 감각으로 시라는 결합체를 만들 때 시적이라는 표현과 함께 그 의미가 부여된다고 본다.
사실 예술의 골격체를 이루는 것이 미의 추구라면 이 미의 추구에 있어서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생명을 잃은 하나의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모든 사물을 보고 느끼고 명상하되, 그 명상한 이미지를 시라는 그릇 속에서 정확하게 살아 숨쉴 수 있게 불어 넣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불어 넣어준 혼이 독자의 혼 속에서 결합되어 생명의 영원한 불꽃으로 타올라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적 삶으로 이어지는 종교 역시 사랑의 불꽃으로 신과 인간과의 일치로 결합된 심층 속에서 죽음도 가를 수 없는 사랑의 불꽃으로 타올라야 한다.
마치 성 아우구스띠노 성인이 갈파한 것처럼 “빵을 사고 싶을 때 동전을, 가구을 사고 싶을 때 은전을, 토지을 사고 싶을 때 금전을,  그러나 사랑을 사고 싶을 때는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의 값은 오직 당신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  진실로 희생을 요구하는 참된 사랑의 값은 오직 상대를 위하여 바쳐야 한다 했듯이 시인 역시 그런 희생 정신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가 궁극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인간의 구원된 삶을 추구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시 역시 그런 의미를 포함한 미래지향적인 위치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같이 종교나 시는 사랑으로 응결된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발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의 고귀한 눈물 속에 감추어진 헌신적인 사랑으로“나는 죽고 너는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사랑 안에 머무르는 끌어안음의 희생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눈만 뜨면 불포화지방성과 같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높은 치수로 살맛을 잃어버리게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가 개탄해야할 현실로 어둠 속에 어둠을 낳으며 삶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성 말살의 위기의식마저 느끼게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병리 현상이나 고통은 모두가 밝은 내일을 위한 전초적인 아픔과 고통이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마치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조개나 귤 속에 원치도 않는 이물질이 들어가서 참을 수 없는 아픈 고통을 겪고 난 뒤에야 그 고통의 댓가로 아름답고 값비싼 진주로 생산해 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이와 같이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훈련시켜서 올바른 인간으로 인격형성을 만들어 주는 거름의 역할을 한다.
밀톤은 “웅대한 시의 창작을 원한다면 그 생활이 웅대한 시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이 하나의 시가 되고 창작이 되고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의 에너지로 피의 수혈과 같은 소망과 구원이 되는 종교적인 사상성에 연유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예일대학 신학자이며 교수인 H뉴엔이  “생명은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죽음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은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라고 한 말처럼 진실로 내가 나답게 된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출발이자 하느님의 본질에 완전히 흡수되는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다워진다는 것은 최초에 하느님의 모상 대로 빚어진 그 분의 본질에 흡수되어 그 분의 뜻 안에 삶의 중심 추를 맞출 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존재의 의미가 발견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종교시는 시의 총체적 이론을 타게 한 가장 원초적인 순수그대로 생명 존재의 절대적인 그분과 하나 되고 저 하는 염원 담긴, 어쩌면 고백소에서 흘리는 참회의 눈물과도 같은 영혼의 울림소리이다.
그리고 시인의 사명이 그 시대의 예언자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면 종교시는 더더욱 깊고 뜨거운 울림으로 아픈 영혼을 위한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가가 노래해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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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죽
  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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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죽
  200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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